조각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노동자 죽음 막을 수 있나

조각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노동자 죽음 막을 수 있나

기사승인 2021-01-07 06:20:01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운데)와 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 김용균 재단이사장, 고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씨 등이 11일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가고 있다. (왼쪽부터)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김미숙 김용균 재단 이사장, 강은미 원내대표, 고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씨, 심상정 의원. 박효상 기자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여야가 예고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노동계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알맹이’가 빠진 채 통과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여야는 오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안전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기업을 형사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법안이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지난 6월 처음으로 대표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재계의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기존 안보다 한발 물러선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후 여야도 기업 책임자의 처벌 수위 등을 줄이는 안에 합의했다. 안전·보건 조치를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에 이르게 했을 경우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기로 한 것이다. 벌금의 하한선도 사라졌다. 기존 강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한 ‘3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 벌금’보다 처벌 수위가 낮아진 것이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왼쪽)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양대노총 긴급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계에서는 정부안의 철회를 촉구하며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는 6일 “진짜 책임자를 처벌하고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원청·발주처에 대한 명확한 처벌 ▲중대재해에 사고가 아닌 질병사망도 포함 ▲사업장 규모별 차등 없는 적용 △공무원 책임자 처벌 ▲인과관계 추정 도입 등이 법안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사업장 규모에 따른 유예 등에는 강하게 반발했다. 앞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처벌을 4년간 유예하는 법안이 제안됐다. 지난 2018년 말 통계청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98.8%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재해의 78.7%가 일어난다. 사망자의 수는 전체의 79.1%를 차지한다. 

처벌 수위도 문제로 지적됐다. 여야는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내리도록 합의했다. 그러나 부상과 질병의 경우에는 하한형이 없다. 법인에 부과하는 벌금형에도 하한형이 없다.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기준 산업재해 사망자 2020명 중 질병 사망자는 1165명이다. 전체의 58%다. 지난 2018년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세계 평균 산재 사망 중 질병은 86%에 달한다. 산업재해 중 질병 관련 비율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4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역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2021년 시무식에서 열사의 동상에 머리띠가 둘러져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구멍 난 노동법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근로기준법은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적용이 제외된다. 야간·연장 근로수당을 받지 못하고 정당한 사유가 없어도 해고될 수 있다. 지난 2019년 8월 기준 5인 미만 사업장 임금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18.4%에 달했다.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도 알맹이가 빠졌다. 본래 법안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원청·발주처 등 실질적 책임자를 처벌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국회 논의를 거치며 다수의 예외사항이 만들어졌다. 도급을 금지하는 업종은 수은, 카드뮴 등 화학물질 업종으로 한정됐다. 고(故) 김용균씨가 일하다 사망했던 발전을 비롯해 조선, 건설 등 다수의 업종은 도급을 막지 않았다. 

김용균법이 시행된 후에도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지속 발생했다. 책임자를 강하게 처벌하지도 못했다. 지난해 4월 발생한 경기 이천 한익스프레스 신축공사 현장 화재 사고가 대표적이다. 이 화재로 3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12명이 다쳤다. 책임자 일부에게만 실형이 선고됐다. 법원은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관계자에게는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시공사 건우의 현장소장, 감리사 관계자, 또 다른 시공사 관계자 등에게는 각각 징역 3년6개월과 금고 1년8개월, 금고 2년3개월이 선고됐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재난참사 피해자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각계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취지와 달리 조각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법학계에서는 지난해 12월29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각 조문은 그동안 끊임없이 반복된 산업재해와 더 이상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피해자와 유가족의 절규가 담겼다”며 ▲모든 사업주에 대한 적용 ▲인과관계 추정 등이 명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난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도 나섰다.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와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총연합,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 춘천봉사활동 인하대희생자유족협의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원안 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며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와 국회가 오히려 입법 취지를 훼손하려 한다”고 토로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정의당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현관 앞에서 열린 가운데 고 김태규 노동자의 누나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효상 기자
노동 관련 전문가는 내실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이천 화재 사건은 발주처의 공기 단축 요구에 맞추려 발포와 용접작업이 같이 이뤄졌기 때문에 발생했다”며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발주처에 대한 책임이 강화됐다면 이천 화재 사건으로 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 목숨과 경제 중 무엇이 먼저인지는 자명하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경제 논리에 밀려 조각나고 알맹이 없는 법으로 제정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