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조계원 기자 =집값 상승과 함께 전세매물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서울시의 장기전세주택(시프트) 편법 입주를 부추기는 기획부동산(브로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철거민 특별공급’을 통해 자산 및 소득 제한 없이 20년 장기전세 입주를 100% 보장한다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 결과 임대주택 취지와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임대주택에 들어서고 있다.
26일 제보자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SH장기전세주택을 대상으로 한 기획부동산들의 광고가 급증했다. 한 제보자는 “얼마 전 전세로 거주하는 집에 광고 팜플릿이 도착했다”면서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서 공급하는 장기전세에 별다른 자격조건 없이 100% 입주가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SH장기전세는 인근 전셋값의 60∼80% 수준으로 20년 동안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말한다. 제보자가 받은 광고 팜플릿에는 이러한 임대주택 입주와 관련해 ▲청약통장 필요없음 ▲자산제한 없음 ▲본인명의 입주 ▲입주전 지구변경 가능 ▲소득제한 없음 ▲최장 20년 장기전세 ▲선택입주 가능 등의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광고 팜플릿으로 연락해본 결과 브로커는 불법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브로커는 “양재, 내곡, 세곡2지구 같은 경우 25평형 기준으로 2억5000만원~3억2000만원이면 입주가 가능하다”며 “이는 주변 시세대비 30%가까이 저렴한 금액”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딱지(입주권) 거래가 아니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고, 철거 예정인 주택을 매입해 합법적으로 철거민 신분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로커의 설명을 들어보면 브로커는 철거 예정인 소형 주택을 미리 사놓거나 나올 물건을 잡아놓고 이를 전세수요자에게 매각한다. 그 과정에서 소정의 수수료가 따라 붙는다. 전세수요자의 철거주택 매입은 공고 공람일 이전에 마무리됨에 따라 수요자는 합법적으로 철거민의 자격을 부여 밭는다. 이후 1~1년반이 지나면 수요자는 철거민 특별공급을 통해 SH장기전세주택에 자격제한 없이 입주가 가능해 진다.
이는 서울시와 SH공사가 철거민을 위해 특별공급하는 임대주택을 노리고 철거 직전의 소형 주택을 매입해 임대주택 입주에 필요한 소득 및 자산 요건을 모두 피해가는 수법이다. 특히 철거민 특별주택을 통해 장기전세에 입주하면 20년 동안 자산심사도 받지 않는다. 처음부터 자산요건이 없었던 만큼 임대주택에 살면서 벤츠 등 고가 해외 수입차도 보유할 수 있는 셈이다.
이러한 편법 입주가 가능한 것은 현행법상 철거민 대상 임대주택 특별공급에 아무런 자격요건이 없기 때문이다. SH공사 관계자는 “철거민 특별공급의 자격 요건은 현행법을 따라 결정된다”며 “현행법에서 철거민 특별공급에 별다른 자격을 두고 있지 않은 만큼 SH 자체적으로 공급자격을 제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동일한 법령에 따라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철거민에 대해서는 임대주택 입주자격에 별다른 요건을 두고 있지 않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철거민 주거안정 지원의 딜레마라고 평가했다. 한 건설업계 연구원은 “임대주택에 취지와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입주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만 자격을 강화할 경우 철거민의 주거안정과 역행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행정력이 이러한 문제를 모두 잡아내기도 쉽지 않다”며 “법에 따라 서류상 문제가 없을 경우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정당한 거래를 통해 입주자격을 획득한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다”고 부연했다.
다만 부동산업계에서는 기획부동산을 끼고 철거 예정인 소형주택을 매입하는 데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철거 예정인 주택이 언제 어떻게 철거가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며 “문제가 생겨 사업이 수년간 지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가 됐을 때 기획부동산이 사무실을 정리하고 떠나버리면 찾을 길도 없다”며 “기획부동산을 통한 거래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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