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임 부장판사의 법률대리인인 윤근수 변호사(법무법인 해인)는 김 대법원장의 녹취록과 녹취파일을 공개했다. 이는 지난해 5월22일 임 부장판사가 사의를 밝히며 김 대법원장과 면담할 당시 녹취된 것으로 전해졌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하겠다는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하면서 “나로서는 영향이랄까 그걸 생각해야 한다. 그중에는 정치적 상황도 살펴야 한다.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사표를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듣겠느냐”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판사) 탄핵이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정치적 상황은 다른 문제다. 탄핵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사표를 수리했다는 비난을 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김 대법원장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사표를 반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대법원장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야기로도 해석된다.
녹취록이 공개됨에 따라 거짓 해명을 내놓은 대법원도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법원은 3일 “임 부장판사가 김 대법원장에게 정식으로 사표를 제출하지는 않았다. 탄핵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이 없다”며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에게 일단 치료에 전념하고 신상 문제는 향후 건강상태를 지켜본 후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말했다”고 해명했다.
사법개혁 적임자로 평가됐던 김 대법원장은 지난 2017년 9월 임명됐다. 개혁성향으로 ‘판사블랙리스트’로 촉발된 사법갈등을 봉합할 인물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김 대법원장 취임 후 양승태 대법원에서 묻혔던 ‘사법농단’ 의혹이 재조사됐다.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지난 2018년 5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입법 추진을 위해 재판개입과 판사사찰을 시도한 정황을 확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을 포함해 당시 연루 의혹을 받는 판사들이 줄줄이 법정에 섰다.
김 대법원장은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 후 “이번 일로 인해 국민 여러분께 걱정과 실망을 안겨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저 역시 마찬가지로 굉장히 실망하고 있다. 합당한 조치와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사과했다. 지난 2019년 1월에도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 것에 대해 “참으로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 대법원장이 제대로 된 사법개혁을 진두지휘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법농단 연루 의혹 판사들에 대한 징계는 솜방망이에 그쳤다. 재발방지책 역시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었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12일 “책임자 처벌 등 사법농단 문제를 해결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약속이 무색하게 김 대법원장은 제대로 된 징계는커녕 사법농단 관여 법관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지난해 12월4일~6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김 대법원장 사법개혁에 대한 평가를 물은 결과, 전체 응답자 중 55.1%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긍정 평가 14.7%, 잘 모름·기타 30.2%였다. 조사는 ARS 유·무선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은 4.5%다.
반면 사법부 내에서는 판사 탄핵과 재판 판결 때마다 판사에 대한 인신공격이 자행되는 사례에 대해 김 대법원장이 적극적으로 방어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녹취록이 공개된 후, 김 대법원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야권에서는 김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김 대법원장은 정권의 판사 길들이기에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사표 수리를 거부하면서 후배를 탄핵의 골로 떠미는 모습까지 보였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도 “법부의 수장이란 사람이 대놓고 정치적 고려를 한다며 민주당의 눈치를 살피고 1심에서 무죄 선고된 후배 법관을 탄핵시키기 위해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거기에다 사법부의 수장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까지 하고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사법농단 아니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김 대법원장을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는 김 대법원장을 명예훼손 및 직무유기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는 이유에서다.
김 대법원장은 아직까지 거짓 해명 논란 관련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 대법원장의 임기는 오는 2023년 9월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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