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뿌리의집, 세이브더칠드런, 정치하는엄마들, 탁틴내일 등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상희 국회부의장과 남인순·신현영·양이원영·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도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학대아동의 실루엣이 그려진 영정을 가슴팍에 안았다. 영정에 둘러진 검은 띠에는 ‘죽음에서 배울 의무’라는 글자가 적혔다. ‘#죽기 전에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진상조사+제도개선’ 문구가 적힌 피켓도 놓였다.
이들 단체는 “아동학대 근절대책을 세우는 출발은 단기간에 제출된 미봉책이 아닌 아동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샅샅이 살피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면서 “현행법은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대한 공적 조사체계를 두고 있지 않다. 정부 주도로 진상조사를 벌여 현행법과 제도의 문제를 제대로 따져보고 대책을 마련해 기존 아동보호체계를 개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부의장은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아동학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특별법 제정을 통해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정책전환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5일 김 부의장을 비롯한 여야 의원 139명은 ‘양천아동학대사망사건 등 진상조사 및 아동학대 근절대책 마련 등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진상조사위원회 설치·운영과 아동학대 근절대책을 포함하는 조사결과 보고서 작성,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를 국가기관이 따라야 한다는 점 등이 명시됐다. 아동 관련 단체들은 조속한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1998년 경기 의왕에서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학대를 받던 아동 중 1명은 사망해 암매장됐다. 또 다른 1명은 온몸 곳곳에 상처와 함께 극도의 영양결핍 상태로 발견됐다. 이를 계기로 아동학대는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학대받은 아동을 부모로부터 분리시키는 아동복지법 개정이 이뤄졌다.
그러나 아동학대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경북 칠곡과 울산, 인천, 경기 평택·포천, 경남 창녕, 서울 양천 등 곳곳에서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지속됐다. 법은 아동이 고통스럽게 사망한 후에야 개정됐다.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는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적 공분이 쏟아지고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형량 강화가 지속적으로 논의됐다. 반면 진상조사를 통해 제도를 체계적으로 되짚어본 일은 없다. 잔혹한 아동학대 사건이 하나씩 발생할 때마다 ‘땜질’식으로 법이 만들어지거나 개정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민간주도로 아동학대 사망사건 보고서가 두 차례 작성됐다. 2013년 울산에서 학대로 사망한 아동의 죽음을 추적한 ‘이서현보고서’와 2017년 대구·포천 입양아동 학대 사망사건을 조사한 ‘은비보고서’다.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조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민간 조사이기에 자료 확보 등이 어려웠다. 관련 기관 등에서는 법적 의무가 없기에 개인정보를 이유로 조사 자료를 제출을 거부했다. 보고서를 통해 제시된 해법 또한 제안에 그쳤다.
전문가는 정부 차원의 조사가 이뤄진다면 아동보호체계가 개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아동복지학회 회장인 정선욱 덕성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민간조사와 달리 정부조사는 근절 대책도 관련 기관에 확실히 권고할 수 있다”며 “개인정보를 이유로 거절되는 자료들도 구할 수 있기에 조사의 폭이 넓어진다”고 이야기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양천 아동학대로 사망한) 정인이는 3번이나 살릴 기회가 있었다”며 “공적인 진상조사를 통해 같은 죽음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동학대 관련 자료는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꽁꽁 싸매져 있다. 단편적인 사실만으로는 심층적인 교훈을 얻을 수 없다”며 “길게 조사해 아동보호 체계를 제대로 고쳐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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