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5일 예비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종교적 신념에 의한 경우뿐 아니라 윤리·도덕·철학적 신념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의 양심상 결정을 이유로 집총,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경우,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라면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A씨는 지난 2013년 2월 제대, 현역으로 복무를 마쳤다. 이후 예비역으로 편입됐으나 2016년 3월부터 2018년 4월까지 16차례에 걸쳐 예비군 훈련·병력 동원훈련에 참석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어릴적 폭력적 성향의 아버지를 보며 비폭력주의 신념을 갖게 됐다. 미군의 민간인 학살 동영상을 본 뒤 충격을 받아 살인을 거부하는 신념을 갖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머니와 친지들의 간곡한 설득에 입대했으나 이후 반성하며 양심을 속이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A씨의 진정성을 인정했다. A씨는 예비군 훈련 거부에 따른 재판을 받으며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일용직이나 단기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1심과 2심은 “경제적 손실과 형벌의 위험을 감수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일관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비폭력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이에게 내려진 첫 무죄 판결이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이후 여호와의 증인 신도 등 종교적 신앙에 따른 병역 거부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이 나왔다. 이날 판결을 통해 종교가 아닌 개인의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에도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비폭력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 복무 인정 사례도 있다. 병무청 대체역심사위원회는 24일 비폭력 신념에 따른 군 복무 거부자인 오수환(30)씨에 대해 지난달 대체역 편입 신청 인용 결정을 내렸다. 오씨는 2018년 현역병 입영을 거부, 지난해 대체역 편입을 신청했다. 그는 고등학교 수업에서 한 병역거부 찬반 토론을 계기로 어떠한 이유로도 타인을 해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고 주장했다. 대체역심사위는 오씨의 군 복무 거부가 진정한 양심에 따른 것으로 판단했다.
진실성 논란은 숙제로 남았다. A씨의 무죄가 확정된 날, 대법원 1·3부(주심 박정화·민유숙 대법관)는 비폭력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다른 B씨와 C씨에 대해 “신념이 진실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각각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B씨가 주장하는 병역 거부는 평화주의보다는 권위적인 군대 문화에 대한 반감에 따른 것”이라며 B씨가 병역 거부 전 반전·평화 분야에서 활동한 구체적 내용도 없다고 판단했다. C씨에 대해서는 ”모든 전쟁, 물리력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기보다는 목적이나 동기, 상황에 따라 폭력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C씨가 집회에 참여, 경찰관을 가방으로 폭행해 처벌받은 사실이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B씨와 C씨를 변호한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판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제도가 바뀌고 심사기구가 생겼지만 결국 오늘도 2명의 젊은이가 신념에 따라 감옥에 가게 된 것이 안타깝다”며 “대법원의 판단이 달라지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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