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찰력
사건은 언제 어디에서 벌어질지 모른다. 하찮아 보이는 물건도 언제든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고추리반 부원들이 새라여고 전학 첫날부터 교무실에서 피자 도난 사건을 맞닥뜨린다. 용의자는 여럿인데 뚜렷한 증거는 보이지 않아 답답하던 찰나. 비비와 박지윤이 피자 배달원의 복장과 교무실 문틀에 남은 페인트 자국을 근거로 범인을 색출해낸다. 대수롭지 않은 상황을 대수롭게 여긴 관찰력의 승리다. 다만 무턱대고 주위를 뒤졌다간 오히려 사건 해결을 늦출 수도 있다. 우선 수색하려는 장소에서 눈에 띄는 사물이나 특징을 찾아보자. S반 학생들이 모두 같은 모양의 컵을 사용한다는 점에 주목, 컵을 조사해 단서를 찾아낸 비비처럼 말이다. 인쇄물에서 크기가 다른 글자를 찾아낼 정도의 ‘몽골인 시력’을 지녔다면 더더욱 좋다.
■ 사고력
추리는 일종의 퍼즐 맞추기다. 암호화된 단서를 해석하고, 그 단서들을 연결해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그러려면 이치에 맞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JTBC ‘크라임씬’ 시리즈를 거치며 사고력을 쌓아온 박지윤은 이 분야에 특화된 부원이다. 그는 논리적인 추론과 냉철한 판단으로 부원들을 이끈다. 재재의 활약도 눈부시다. 재재는 S반 교실에 잠입하는 과정에서 교실 자물쇠 비밀번호를 유추해내 부원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지난 3개월 동안 비밀번호 각 자릿수가 등차수열에 따라 바뀌었음을 발견해낸 덕이다. 고인혜의 SNS에 ‘예혼기’ ‘후살맘’이라는 문구가 올라왔을 땐, 애너그램(단어나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문자의 순서를 바꾸어 다른 단어나 문장을 만드는 놀이)을 떠올려 숨은 의미를 찾아낸다.
■ 담력
누군가 숨기려 하는 진실을 파헤치는 일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새라여고는 30년 전 가스 폭발 사고를 비롯해 살인 사건, 지하 벙커, 초록색 알약 등 여러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그만큼 위험천만한 곳이라는 뜻이다. 추리반 부원들은 밤늦게까지 학교를 수색하다가 정전에 기겁하고, 예상치 못한 이의 등장에 겁을 소스라치기도 하며, 믿었던 이에게 속아 분노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비비는 다부진 얼굴로 자신을 위협하는 상대에게 맞선다. 부정행위를 적발당한 고인혜가 으르대는 표정으로 지나갈 땐 성난 미간으로 응수하고, 혼비백산하는 중에도 다른 부원들을 보호하듯 감싼다. 갑작스런 정전에도 “괜찮아”라고 되뇌며 침착하게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는 재재·장도연도 믿음직스럽다. 가장 겁이 많은 박지윤과 최예나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비명을 질러댈지언정 절대 도망치지 않는다.
■ 언변
사건을 수사하다보면 때론 제3자와 협상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추리반은 초록색 알약을 두고 한 학년 선배인 추희선과 기 싸움을 벌인다. 알약을 요구하는 추희선에게 박지윤은 ‘정보를 먼저 달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맞서지만, 단호한 추희선의 태도에 백기를 든다. 물론 추리반이 언변에서 밀리기만 하는 건 아니다. 박지윤은 S반 선발시험 부정행위를 밝혀낸 뒤, 교사들 앞에서 사건 진상을 브리핑했다. 범행 과정을 간명하게 설명하고 증거물을 제시하는 그의 언변은 순식간에 보는 이를 빨아들인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장도연의 화법도 주목할 만하다. 커닝 사건 이후 ‘이제부턴 어른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교사 김정호에게 “어른들은 아무것도 안 했잖아요”라고 응수하고, ‘너 나 좋아하냐’는 교사 민정음의 시시껄렁한 농담엔 “아가리 똥내 난단 말이에요”라고 (몰래) 반격한다.
■ 공감 능력
새라여고에서 벌어진 끔찍한 자살(혹은 살인) 사건 이후 추리반 부원들은 겁에 질린다. 사방이 수상쩍고 위험해서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든다. 하지만 추리반은 옥상 근처에서 본 빨간 목도리를 잊지 않는다. 한 때는 그 목도리의 주인이었던, 지금은 생사를 알 수 없는 고인혜를 잊지 않는다. 그가 생전 겪었을 공포와 불안을 잊지 않는다. 또한 그 목도리가 조작된 증거일 가능성을, 죽은 사람이 나애리일 가능성을 지우지 않는다. 그가 생전 겪었을 부담과 압박을 지우지 않는다. 두려움을 극복할 힘은 피해자를 기억하고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는 데서 나온다. 한편 추리반 부원들은 서로의 감정을 존중하며 단합력을 쌓는다. 누가 더 많은 공을 세웠는지를 두고 다투지 않고, 각자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서로를 보듬는다. 적은 많고 악은 거대하지만, ‘함께’라는 감각은 추리반을 강하게 한다.
wild37@kukinews.com / 사진=티빙 제공, 유튜브 영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