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혁신의료기기의 시장 진출을 돕기 위한 ‘혁신의료기술 평가제도’가 도입됐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기준이 모호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환자 안전성 등이 담보돼야 하기 때문에 평가제도 개선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24일 온라인으로 열린 한국보건의료연구원(보의연, NECA) 개원 12주년 기념 연례학술회의에서는 혁신의료기술 지원 및 평가 방향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임상근거 부족한 혁신의료기술, 별도 평가 트랙으로 시장 진입 기회 부여
이날 ‘혁신의료기술평가 방향’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한 김병수 고려대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도입된 ‘혁신의료기술 평가제도’는 기존의 신의료기술평가와 다른 별도 허가 트랙이다. 혁신의료기술의 임상적 효과에 관한 근거는 부족하지만 안전성이 인정되고, 환자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는 등의 ‘잠재가치’가 있으면 신의료기술로 평가해 시장 진입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상 건강보험에 등재되지 않은 새로운 의료행위를 병원에서 환자에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임상적 안전성 및 유효성을 갖추었는지 평가하는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쳐야 하는데, 인공지능(AI), 3차원(3D)프린팅, 로봇기기 등의 첨단 의료기술이 적용된 기기의 경우 연구결과 축적이 어려워 시장진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혁신의료기술로 승인받으면 3~5년간 한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사용기간 종료 후 7일 이내 보의연을 통해 혁신의료기술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 또 신청인은 혁신의료기술 사용기간 종료일 45일 이내에 ‘최종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이 보고서는 추후 신의료기술 재평가 문헌 검토에 사용된다.
◇전체 22개 신청건 중 4건만 인정…“잠재적 가치 우수하면 인정”
별도 트랙 도입에도 지금까지 접수된 혁신의료기술 평가 지원 사례 22건 중 실제 인정받은 사례는 4건뿐이다. 일각에서는 혁신의료기술 평가 기준이 모호해 인정받는 것이 쉽지 않고, 혁신의료기술로 인정된 사례가 많지 않아 통과가 안 되는 것 같다는 지적이다.
김의석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날 패널토론에서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IT기술과 의료를 접목한 혁신의료기술은 세계시장을 선도할 만큼 역량이 충분하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본다. 다만, 기존 기술과는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부족한 임상적 근거 등의 이유로 빈번히 시장진입이 거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특히 안전성이 확보됐다는 전제 하에 ‘잠재성’이 확인돼야 하는데 잠재적 가치를 심의하는 기준이 질병, 환자중심성, 사회, 기술로 돼있다. 우선순위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제언했다.
한 참가자는 “실제 혁신의료기술로 인정된 건이 많지 않아서 통과되는 비율도 높지 않은 것 같다. 탈락한 기술들은 어떤 점이 부족해서 탈락했다고 보느냐”라고 질의하기도 했다.
이에 신채민 보의연 신의료기술평가사업본부장은 “지난 2019년 별도 트랙이 나오고 지금까지 신청 받은 건수는 22건이고 6건이 대상으로 선정됐으며, 최총 혁신의료기술로 인정받은 건수는 4건”이라면서도 “혁신의료기술 대상 대비로 보면 인정 비율은 70%다. 신청건 대비로 보면 신의료기술평가의 재신청 수단으로 쓰면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아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심의기준을 선정하는 것은 어렵다. 다 만족하지 않더라도 잠재적 가치가 우수할 땐 혁신의료기술로 인정해준다”라면서도 “아무래도 ‘잠재적 가치’이다 보니 포괄적인 느낌이 있어서 애매할 수 있다. 작년에 신의료기술평가 관련 사례집을 발간했고, 그 안에 혁신의료기술의 잠재성에 대한 의견서 제출 방법이 자세히 나와 있다. 이와 함께 평가 관련 컨설팅을 장기간에 걸쳐 지원해주고 있다”라고 밝혔다.
신 본부장은 “아울러 평가기간 단축, 제외대상 확대, 컨설팅 확대 등을 준비하고 있고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는 부분은 줄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빠르게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그러나 이 평가 제도를 두고 많은 분들이 ‘규제’라고 보고 있는데, 규제가 아니라 의료기술의 가치를 높이고 환자의 치료기회를 높이는 조력자라고 인식해주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환자 안전 확보 중요해 제도개선 한계
환자 안전성을 고려해야 하는 측면에서 제도 개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나군호 네이버 헬스케어연구소장은 “사실 일본에는 혁신의료기술 평가제도가 없다. 일본은 오히려 의료진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임상시험 결과가 입증된 기술, 기기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는 트랙이 있다”라면서 “그런데 역으로 우리처럼 혁신의료기술 심사가 없어서 급여권 진입 시 훨씬 복잡해진다. 지금 우리가 평가 기간을 거치는 시스템은 적절하다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나 소장은 “많은 단체에서 (기술 도입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 패스트트랙이 없느냐고 지적하고 있는데, 실제로 심사를 진행하는 위원의 입장에서는 의료라는 것이 일반 IT업계와 완전히 다르고 공정성을 떠나서 안전성 부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본다”라며 “국민의 건강을 담보해야 하는데 규제 샌드박스에 묶어서 (제도완화를) 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금 운영하는 것을 좀 지켜보고 내년 정도에 점검하고 평가하려고 한다. 그런 워크샵에서 나온 결과들을 토대로 방향성을 점검할 것”이라고 했다.
송영조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도 “새로운 기기들이 급속도로 개발되고 있고 의료현장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에 정부도 전 세계 추세에 맞춰서 의료현장에서 새 기술들이 잘 쓰일 수 있도록 제도를 정리하고 있다”며 “신의료기술 평가제도는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의료기술이 현장에서 쓰일 수 있도록 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산업적 측면에서 기술이 사장되지 않고 현장에서 잘 쓰일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 과장은 “이러한 측면에서 전제가 되는 건 안전성이다. 공산품과 달리 환자에게, 의료행위에 사용되는 거기 때문에 제한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처럼 단일건강보험체계에서는 시장 활성화에도 제한이 있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관련 업체, 업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힘들게 개발했는데 장벽이 있다고 호소를 한다. 그런 측면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혁신의료기기 기술에 대해 선진입 후 평가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개선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심사기간을 대폭 줄이고 컨설팅 지원을 확대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도 안전성 측면에서 철저하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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