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도 '뜻' 모르는 현대판 문맹, 혹시 당신도?

읽어도 '뜻' 모르는 현대판 문맹, 혹시 당신도?

기사승인 2021-03-26 06:47:01
그래픽=이정주 디자이너

[쿠키뉴스] 최은희 인턴기자 = # “단어의 뜻을 설명하고 짧은 문장을 만들어 보세요” 

① 가치관 = 그 물건은 가치관이 있다 (중학생 A군)
② 허구 = 나는 허구엇날 고생했다, 인생이 허구하다(중학생 B, C군)
③ 숙환 = 숙부랑 비슷한 뜻?(20대 D씨)

무심코 튼 TV. EBS 특별기획 ‘당신의 문해력’을 봤다. 글자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인 문해력이 젊은 세대에게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다. 제품 설명서나 서비스 약관 등 생활 정보 이해부터 학업까지. 빈곤한 어휘력은 삶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정말 심각한 수준일까?” 궁금해졌다.

설문지를 돌렸다. 24일 초등학생(3~5학년), 중·고등학생, 20대 총 20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나이대별로 단어를 골랐다. 단어 선정은 국립국어원 자료와 교과서 및 학습지를 참조했다. 국문학과 교수 3명의 자문을 받았다. 초등학생에게 △몰두하다 △협동 △섭취 △파출소 △골탕을 물었다. 중학생에게는 △질색하다 △자긍심 △가치관 △보편 △가부장 △허구를 질문했다. 20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는 △기인하다 △상쇄하다 △숙환 △강구하다 △볼모 △문외한을 제시했다. 

설문지를 주고 뜻을 알고 있다면 ‘O’ 표시를 하도록 했다. 정확한 뜻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해당 단어를 넣어 문장을 만들도록 했다.

초등학생용 설문지. 최은희 인턴기자

초등학생 58명에게 물었다. 단어 5개 중 3개 이상 모른다고 답한 학생이 20명에 달했다. 모든 단어를 안다고 한 학생은 14명(24%)에 불과했다. 3명은 전부 모른다고 했다.

초등학생이 가장 어려워한 단어는 ‘몰두하다’ (34%)다. 그 뒤를 ‘파출소’(57%), ‘섭취’(70%), ‘골탕’(74%)이 이었다. 가장 많이 알고 있었던 단어는 ‘협동’(93%)이었다.
중학생용 설문지. 최은희 인턴기자

중학생은 더 심각했다. 중학교 1학년 학생 91%가 제시된 단어 중 절반 이상을 몰랐다. 중학생 85명 중 모든 단어를 알고 있었던 학생은 2명에 불과했다. 백지를 낸 학생은 13명이다. 

중학생이 가장 어려워 한 단어는 ‘자긍심’(6명·7%)이다. ‘가부장’(8%), ‘보편’(14%), ‘허구’(33%), ‘가치관’(35%), ‘질색하다’(72%) 순이다.

20대용 설문지. 최은희 인턴기자

20대 71%는 ‘숙환’을 몰랐다. 반대로 ‘문외한’은 91%가 의미를 알고 있다고 했다. ‘강구하다’, ‘상쇄하다’, ‘볼모’, ‘기인하다’ 순으로 단어 뜻을 아는 비율이 높았다.

부족한 문해력에 교사들은 수업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중학교 교사 심모(38·여)씨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단어를 많이 모른다”며 “단어 설명만 하다 수업 진도를 못 나간다”고 했다. 김모(50) 국문학과 교수도 비슷한 고민을 토로했다. 그는 “전공 수업을 준비할 때, 학생을 고려해 쉬운 단어를 쓰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 청소년의 문해력은 하락하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 문해력 순위는 2006년 1위였다. 계속 순위가 낮아져 2018년 조사에서는 37개국 중 6~11위로 평가됐다.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는 활자가 아닌 영상으로 정보를 접하는 환경을 꼽았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으로 인한 비대면 교육 여파가 크다고 봤다. 10대는 물론 대학생들까지 기본적인 단어 뜻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는 문해력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문제를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국어교육학회 관계자는 “행간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나 어휘력, 비판적 사고력 등은 종이책을 계속 읽어야만 향상된다”며 “읽지 않으니 읽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학생들을 야단칠 게 아니라 교육부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기초 문해력을 향상하기 위해 맞춤형 어휘 학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hoeun2311@kukinews.com
최은희 기자
hoeun2311@kukinews.com
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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