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엔 있고 TV엔 없는 것 [웹예능 전성시대]

유튜브엔 있고 TV엔 없는 것 [웹예능 전성시대]

기사승인 2021-03-27 07:00:04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나영석 PD가 2015년 ‘신서유기’로 웹예능 시대를 연 지 6년. TV 예능이 자가 복제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웹예능을 태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장 규모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OTT 서비스 가운데 가장 높은 이용률을 자랑하는 유튜브는 일찍부터 크리에이터를 육성하며 콘텐츠 경쟁력을 키워왔고, 그 결과 TV 못지않은 영향력을 갖게 됐다. TV 예능의 아성을 무너뜨린 유튜브 예능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개그맨 이창호의 부캐 이호창(왼쪽)과 유재석 부캐 카놀라 유
■ 세계관

유튜브엔 있다! 김갑생할머니김 미래전략실 소속 이호창 본부장이 연일 화제다. 세련된 말투와 자신감 있는 태도로 호감을 사는가 싶더니, 이후 ‘갑질’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최근엔 양복점에서 흉기를 든 강도를 맨손으로 제압해 여론이 다시 들썩이는 중. 사실 이호창은 개그맨 이창호의 부캐(부 캐릭터)다. 지난달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 올라온 ‘B대면 데이트’ 영상으로 눈도장을 찍은 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신년사를 패러디한 설 인사 영상으로 세계관을 넓혔다. ‘빵송국’ 채널에 공개된 ‘이호창. 직원에게 고함치는 (원본영상)’ ‘이호창. 술집 난동 (풀영상)’ 등은 이 캐릭터에 현실감을 더한다. 개그맨 김대희는 유튜브에서 ‘꼰대희’로 통한다. 동료 연예인과 식사하며 대화하는 ‘밥묵자’ 코너가 특히 인기다. 아내 신봉선, 자녀 꼰동민(장동민)·꼰봉숙(신봉선), 반려펭귄 꼰수(펭수) 등 초대 손님을 꼰대희 가계에 편입시킨 세계관이 ‘밥묵자’ 흥행을 이끌었다. 최근엔 배우 김상중이 신봉선의 친오빠, 즉 꼰대희의 처남으로 등장했다.

TV엔 없다? 부캐 열풍을 주도한 MBC ‘놀면 뭐하니?’는 얼마 전 개그맨 유재석의 새 부캐 ‘카놀라 유’와 ‘러브 유’를 잇따라 선보였지만 ‘유산슬’만큼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KBS1 ‘아침마당’, SBS ‘영재발굴단’ 등에 출연하며 트로트 가수로 입지를 다진 ‘유산슬’과 달리, ‘카놀라 유’와 ‘러브 유’ 모두 일회성 캐릭터로 끝났다. 각 캐릭터에 알맞은 세계관을 만들지 못한 탓이다. 잘 짜인 세계관은 부캐에 현실감을 더해주고 활동 반경도 넓혀준다. 반면 원전(본캐)와 분리되는 설정을 설계하지 못한다면, 부캐는 ‘또 다른 자아’로 발전하지 못하고 ‘분장 쇼’에 그칠 뿐이다.

유튜브 ‘네고왕’(왼쪽)과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 ‘앞광고’ 

유튜브엔 있다! 방송인 장영란이 광희의 바통을 이어받아 진행하는 유튜브 예능 ‘네고왕’은 광고 목적을 전면에 알린, 일명 ‘앞광고’ 콘텐츠다. 매주 한 기업을 찾아가 소비자를 대신해 할인 행사를 협상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광고 사실이 알려지면 진정성이 의심받을 것이란 통념을 깨고 벌써 두 시즌 째 흥행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네고왕’은 매력적인 파트너다. 최근 성차별 면접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된 동아제약을 제외하면, 출연 기업 대부분이 방송을 통해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된 유료 광고 표시 제도가 자리 잡으면서 ‘네고왕’처럼 방송과 브랜드가 협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래퍼 이영지는 유튜브 채널 ‘영지발굴단’에서 롯데월드·야놀자와 협업한 콘텐츠를 선보인 뒤 포털사이트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오르며 주목 받았다. SBS 모비딕 채널 ‘제시의 쇼!터뷰’는 광고 제품을 활용한 ‘PPL 인터뷰’를 선보이기도 했다.

TV엔 없다? 지난해 시청률 35.7%를 기록하며 종편 예능 새 역사를 쓴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이 프로그램은 과도한 간접광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 제재를 받으며 흑역사도 함께 썼다. 경연을 준비하는 참가자가 대기실에 진열된 광고상품을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섭취한 장면이 문제가 됐다. tvN ‘라끼남’, KBS2 ‘편스토랑’, SBS ‘미운우리새끼’ 등도 출연자가 광고상품을 이용하는 장면 때문에 방심위에 넘겨졌다. 리얼리티를 가장한 간접광고에 시청자 항의가 이어지면서, 최근엔 TV 예능에서도 ‘대놓고 광고’하는 사례가 생긴다. 유재석은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간접광고 제안서 내용을 언급해 웃음을 안겼다.

유튜브 스타 최준(왼쪽)과 MBC ‘라디오스타’ MC들.
■ 새 얼굴

유튜브엔 있다! 카페 사장 오빠 최준은 유튜브에서 TV로 ‘역수출’된 캐릭터다. 개그맨 김해준이 tvN ‘코미디 빅리그’의 ‘네 눈의 콩깍지’ 코너에서 선보였던 복학생 캐릭터가 최준의 모태다. ‘네 눈의 콩깍지’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3회 만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시작한 최준 열풍 덕분에 김해준은 ‘유 퀴즈 온 더 블럭’ ‘놀면 뭐하니?’ 등 굵직한 TV 예능에 출연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피식대학’ 콘텐츠를 책임지는 이용주·정재형·김민수는 지상파 공채 개그맨이지만 TV보다 유튜브에서 먼저 떴고,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과 tvN ‘코미디 빅리그’에 나왔던 김주연은 일주일 간 한 가지 다이어트 방법에 도전하는 유튜브 콘텐츠로 유명해졌다.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의 문상훈은 TV를 거치지 않고 유튜브로 데뷔했다. 그는 유튜브에서 한국지리 일타강사 문쌤, 아이돌 그룹 나인인원 멤버 강하 등 여러 캐릭터와 세계관을 선보이며 27만 명 넘는 구독자를 모았다.

TV엔 없다? “새로운 예능 인재가 나올 프로그램이 없다”던 유재석의 고민은 해결될 수 있을까. TV 예능이 ‘고인물 잔치’가 되면서, ‘뉴 페이스’ 발굴 주도권은 온라인으로 넘어갔다. 주말 황금 시간대 예능 진행자는 수년 째 유재석·신동엽·서장훈·전현무·김성주 등으로 고정됐다. 토크쇼와 버라이어티의 자리를 관찰 예능이 대신하면서 ‘예능 루키’ 찾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무엇보다 지상파 3사 공개 코미디가 막을 내리면서 신인 코미디언이 설 자리가 사라졌다. 젊은 출연자도, 젊은 시청자도 떠난 TV 예능은 얼마나 오래 수명을 이어갈 수 있을까.

wild37@kukinews.com / 사진=유튜브 피식대학·달라스튜디오 채널, MBC ‘놀면 뭐하니?’·‘라디오스타’,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캡처.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