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세입자가 있는 집 시세는 집주인 거주 매물에 비해 다소 저렴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업계는 세 낀 집을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실거주 매매를 고민하는 이들은 세입자가 있는 집을 두고 "골치 아프기 싫다"고 입을 모은다. 세 낀 집을 매수할 경우 자칫 새 집주인인 매수자가 그 집에 입주를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는 '세입자가 거주하는 집=팔기 힘든 집'이라는 인식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최근 법원은 세입자의 갱신청구권이 집주인의 거주권보다 우선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새 집주인이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샀더라도 기존 세입자가 이전 집주인에게 갱신청구권을 행사했다면 전세 계약을 연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갱신청구권은 임대차 계약 만료 6개월~1개월 전까지 행사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10일 이후 최초로 체결되거나 갱신된 계약에 대한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는 계약 만료 6~2개월 전에 이뤄져야 한다.
법조계에 따르면 24일 수원지법 민사2단독 유현정 판사는 새 집주인 A씨가 세입자 B씨를 상대로 낸 건물 인도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A씨는 실거주 목적으로 지난해 8월 C씨가 소유한 경기도 한 아파트를 매매계약했다. A씨는 기존 세입자인 B씨가 올해 2월까지만 살고 이사한다는 말을 믿고 매수했다. 문제는 매매계약 한 달 뒤 B씨가 기존 집주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서 벌어졌다. 당시 A씨는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기 전이었다.
A씨는 실거주 목적으로 부동산을 매수한다고 반복해서 알렸고 C씨가 임대차 기간이 끝나면 이사한다는 의사를 표시해 이를 믿고 집을 샀다고 주장했다. 임대차보호법은 임대인과 직계존비속이 해당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 계약갱신을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C씨는 사정이 어렵다며 이사를 거절했다. 법원은 세입자 손을 들어줬다. 세입자인 C씨가 새 주인인 A씨가 소유권 이전을 완료하기 이전에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했고, 당시 임대인인 B씨에겐 이를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없었다는 것이 근거였다.
A씨는 항소했다. A씨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명도의 정민경 변호사는 "사회통념상 집주인이 자신의 집을 매
매하면서 임차인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이사 여부를 확인한 후 임차인의 동의 하에 집까지 보여주고 매수인이 실거주를 한다고 임차인에게 수차례 말했다"면서 "임차인도 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매수자에게 실거주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충분한 신뢰를 부여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가까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전세 계약을 둘러싼 계약갱신청구권 행사와 관련한 법원의 첫 판단이다.
해당 판결 이후 부동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세입자의 갱신청구권에 대해 문의하는 글을 쏟아지고 있다.
부동산·재테크 관련 커뮤니티 일부 회원들은 "매매했는데 세입자가 안 나간다고 버티면 어떡하나" "만기 6개월 이전 등기를 못했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세입자랑 싸우기도 싫고 골치 아파서 세 낀 집은 거래 못하겠다" "힘들게 내 집 마련 좀 하려는데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나" "내가 집을 샀는데 왜 다른 사람이 사는 거냐" 등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문제는 지난해 7월31일 임대차보호법 개정 이후 세 낀 집 매매에서 기존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로 매매계약이 무산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이미 보완 필요성이 지적돼 온 부분이다.
이에 정부는 올해 2월13일이 돼서야 집 매매 계약을 할 때 기존 세입자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계약서상에 적도록 하는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이 개정안을 내놨다.
계약서에 확인을 적는 것만이 끝이 아니다. 새 집주인이 실거주를 목적으로 계약 갱신을 거절하려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이전, 즉 전세계약 만료 최소 6개월 이전에 잔금을 치른 뒤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 마쳐야 한다.
잔금과 이전 등기가 대개 매수자가 입주하는 시점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 집주인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것 투성이다.
한 매수 희망자는 "매매가와 전세보증금 차액만큼 현금을 융통할 수 있어야만 (시세보다 좀 더 싼) 세 낀 집 매매가 가능하다. 집값이 많이 올라서 전세보증금과 수억원씩 차이가 나는데 그만큼을 현금으로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나"고 지적했다.
또 다른 매수 희망자는 "집을 매매하면서 부족한 부분은 대출을 받은 경우가 많은데 만기 6개월 전 대출을 받아서 등기를 하면 실거주할 때까지 이자 부담도 새 집주인이 가져야 한다는 것인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 공인중개사는 "부동산 정책이 많이 바뀌면서 복잡해졌다. 세 낀 집을 매매할 때 만기 전 등기를 해야 하다보니 주택담보대출이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또 현 세입자의 임대차 기간과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확실히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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