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집밖 아이들…사각지대 놓인 아동‧청소년 주거권

위기의 집밖 아이들…사각지대 놓인 아동‧청소년 주거권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아동‧청소년 주거권 마련 기자회견
"서울시 주거복지제도 등에 아동‧청소년 포함시켜야"
아동‧청소년 지원주택 50호 공급 필요성
서울시 아동‧청소년 주거복지센터 설립 요청

기사승인 2021-04-03 06:30:04
살던 공간에서 급하게 떠나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아이들의 물건들. 사진=안세진 기자
[쿠키뉴스] 안세진 기자 =#저에겐 집은 숨 막히고 지옥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목격한 제 친구들의 속사정은 이러했습니다. 저처럼 이유 없는 신체적 폭력을 겪은 친구, 아빠의 성폭력에도 어느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가만히 있어야 했던 친구, 부모님의 계획대로 움직여야만 했던 친구. (기초생활)수급가구의 인원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 머릿수만 채우는 느낌으로 여러 폭력에도 집에서 견뎌야 했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집은 무섭고 적막한 공간이었습니다.

#집을 떠나는 게 안전할거라 여겼지만 막상 집을 나오니 더 어려운 상황에 노출됐습니다. 어느 날 아파서 응급실 치료를 받아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보호자가 필요했는데 친구들을 그 역할을 할 수 없으니 연락을 원치 않던 가족에게 연락해 도움을 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순 주거와 생필품 지원이 아닌 자립생활을 계획할 수 있게끔 지원이 필요합니다.

아동학대, 친족성폭력, 가정폭력 등으로 인한 탈가정 아동‧청소년에 대한 주거권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원치 않게 가정을 떠나온 이들은 보육원은 물론 사회에 나와서조차도 법적으로 마련된 제도 장치로부터 소외되고 있었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가 2일 오전 10시 청와대 인근 사전투표소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안세진 기자


◇시설에서 떠밀린 아이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현재 전국 240개 아동양육시설에 아동 1만585명이 수용되어 시설당 평균 44명이 생활하고 있다. 전체 시설의 80%는 30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등 대규모 집단 수용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에는 43곳의 ‘아동복지시설’에서 2283명의 아동‧청소년이 생활하고 있고, 종사자는 총 1347명이다. 이에 따른 서울시 예산은 약 913억원(운영지원 867억원, 생활아동지원 43억원, 기능보강 3억원 등)을 넘는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는 “수용시설인 현 아동양육시설(보육원)은 원가정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아동‧청소년의 주거대안이 될 수 없다”며 “이러한 구조는 아동양육시설이 ‘집다운’ 주거가 아니며, 아동‧청소년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시설수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낸다”고 비판했다. 

이어 “서울시의 예산에서는 경계선 아동 자립지원에 2억2622만원, 보호종료아동 주거지원 통합서비스를 위해서 4억1336만원, 1인당 매달 30만원씩 지급하는 자립수당 지급을 위해서는 40억716만원이 책정됐다. 자립을 위한 예산의 대부분이 금전적 지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나마 주거지원통합서비스 예산은 약 4억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2020년 기준 전국 240개 아동양육시설별 생활 아동 현황. 사진=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2020년 기준 서울시 43곳의 아동복지시설의 예산 현황. 사진=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


보육시설에서 떠밀린 이들은 각종 법적 제도에서도 배제되었다. 현재 서울시 등에는 주거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법적 제도가 있지만, 아동‧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한 기존 법 제도는 미비한 상황이다.

우선 ‘주거급여법’은 가구단위 보장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개별가구의 구성에서 만 30세 미만의 미혼자녀는 부모와 동일 보장가구에 포함되어 있어, 탈가정 아동ㆍ청소년이 단독으로 주거급여 수급 대상이 되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게 현실이다.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지원 정책이 존재하나 보건복지부 관할 아동복지시설에서 만 18세 이후 퇴소 청소년에게 주거 등 자립지원이 이뤄지므로 쉼터 퇴소 청소년이나 보호기간이 종료되기 전 아동복지시설을 떠난 청소년은 이용할 수 없다.

또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는 청소년 홈리스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탈가정 청소년들이 임대주택의 공급, 임시주거비 지원 등 노숙인 주거지원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

현재 서울시는 청년월세지원사업을 시행해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 1인 가구 중 소득기준을 만족하는 자를 대상으로 월 20만원의 임대료를 최대 10개월까지 지원한다. 그러나 지원의 대상자에 만 18세 이하 청소년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밖에 서울시에는 현재 긴급복지지원제도,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주택바우처 제도 등이 마련되어 있지만, 주거 위기를 겪고 있는 탈가정 아동‧청소년은 배제되어 있는 상황이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가 2일 오전 10시 청와대 인근 사전투표소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안세진 기자


◇“주거복지제도 재정비해야”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는 ▲서울형 긴급복지제도 및 서울시 주거복지제도의 아동‧청소년 포함 개정 ▲아동‧청소년 지원주택 50호 공급 ▲서울시 아동‧청소년 주거복지센터(가칭)의 설립 등을 요구했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는 가정폭력과 방임 등의 사유로 집 밖으로 나오게 된 청소년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해 청소년 현장기관과 사회복지법인, 법무법인 등이 함께 모여 활동하는 단체다.

우선 이들은 앞서 언급한 각종 법적 제도 장치들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주거권네트워크 관계자는 “서울시 내에서 노숙인 주거지원제도, 청년월세지원사업, 긴급복지지원제도 등 다양한 지원사업이 있지만 아동‧청소년들은 배제되어 왔다”며 “이들을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원주택을 마련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서울시는 2019년부터 전국 최초로 ‘서울시 지원주택 공급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시행하고 있지만 해당 사업은 장애인‧노인 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황이다.

이에 주거권네트워크는 “해당 조례 제3조 제5호에서는 서울시장이 별도로 정하는 사람에게도 지원주택을 제공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현행 조례만으로도 장애인, 정신장애인, 홈리스, 노인 등과 마찬가지로 주거위기에 놓인 탈가정 아동‧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지원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며 “기존 입주대상자를 위한 지원주택 공급물량도 부족한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지원주택 공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가 2일 오전 10시 청와대 인근 사전투표소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안세진 기자

청소년 주거복지센터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는 “국가는 아동‧청소년에게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할 의무가 있다. 정책의 실시를 위해 충분한 예산과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국가와 각 지자체는 청소년들을 보다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법률에는 아동‧청소년을 주거권의 주체로 명시하지 않고, 국가 차원의 주거권실태조사 및 연구가 이루어진 적도 없다. 또 주거권 보장 정책을 만들고 반영할 전달체계도 없다”며 “위기청소년의 상담 및 복지제도를 운영하도록 설치된 청소년상담복지센터는 주거가 없는 아이들에게 쉼터를 연계하는 것 말고는 주거지원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서울시는 아동‧청소년의 주거권을 실현하기 위한 조사와 연구, 정책 수립, 전달체계 운영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asj0525@kukinews.com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안세진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