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봤더니] LH 토지보상에 무너져 내린 ‘삶’

[들어봤더니] LH 토지보상에 무너져 내린 ‘삶’

주민들이 말하는 고양시 덕은지구 토지보상 문제들

기사승인 2021-05-01 07:20:02
[쿠키뉴스] 조계원 기자 =주택공급을 위한 토지개발이 곳곳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토지보상 허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LH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으로 토지보상이 투기꾼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국민이 알고 있다. 반면 토지를 강제로 빼앗긴 원주민이자 토지주인 사람들에 대한 토지보상의 허술함은 모르는 이들이 많다. 앞서 진행된 고양시 덕은지구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토지보상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에 대해 들어봤다.

고양시 덕은지구 자료=고양시 제공

◇단란하게 모여살고 싶었을 뿐인데


집과 땅이 강제 수용당하고 수년째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사연이 있다. 법원까지 나서 보상을 해줄 것을 판결했지만 LH는 여전히 ‘검토중’이라는 답변만 내놓고 있다. 

A씨는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의 주택을 2003년 매입해 2005년부터 가족들과 거주해왔다. 그러다 소유하고 있던 인근 땅에 2007년 12월 신축허가를 받아 새집을 짓기 시작했다.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성장해 가정을 꾸리면서 기존 집은 자녀에게 물려주고 새로 지은 집에서는 남은 노년을 보내려는 목적이었다. 정씨는 구상에 따라 2008년 3월 기존 집은 아들에게 증여했다. 

변수는 2008년 4월 발생했다. 정부가 덕은동 일대의 도시개발을 발표하고 도시개발구역 지정을 위한 공람공고를 한 것. A씨는 당시만 해도 집과 토지가 강제수용 되더라도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공람공고일 전에 신축허가가 났고 이미 오랜 기간 덕은동에서 살아와서다.

A씨는 2008년 완공된 새 집으로 이사했고 2016년까지 8년을 거주했다. 이후 2016년 토지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보상계약을 체결한 후 다시 덕양구 관내로 이주했다. 문제는 공람공고일 1년 전부터 거주했던 원주민들에게 주어지는 ‘이주자보상’에서 발생했다. 이주자보상은 토지 보상과 별도로 거주했던 생활터전을 상실한 것에 대한 보상이다. 그래서 일정 기간 실제 거주한 주민에게만 보상이 지급된다.

A씨는 2003년부터 덕은동에 거주해왔던 만큼 이주자보상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LH는 정씨가 공람공고일인 2008년 4월 이후 주택을 취득해 이주자보상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건물이 공고 공람일 이후 완공된 만큼 보상 기준일에 소유한 주택이 없어 거주민이 아니라고 지적한 것이다.

갑작스런 소식에 억울했던 A씨는 항변했지만 오히려 투기꾼이라는 비판만 들었다. 이주자 택지를 받아 그 곳에서 노년을 보내려던 계획은 어그러졌다. 이에 A씨는 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했고 법원은 결국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 A씨가 사업 구역 내에서 계속 거주했고, 공람일 전에 공사가 이미 진행된 점 등을 들어 거주민 자격을 인정했다. 또한 투기 의도가 없었다는 점도 확인해 줬다. LH는 즉각 항소했지만 법원은 2021년 1월 이를 기각했다.

법원의 판결로 끝날 것 같았던 이 문제는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다. LH가 보상을 수개월째 검토만하고 있어서다. LH는 판결 이후 지난 3월까지 이주자 보상에 대한 답변을 줄 것으로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시점이 되자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A씨의 항의에 돌아온 것은 6월까지 기다리라는 통보였다. 

A씨는 “가족들과 단란하게 모여 살려던 꿈이 LH의 허술한 보상과 대응으로 모두 무너졌다”며 “LH는 오히려 자신과 가족들을 투기꾼으로 몰아 고통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있으면 소송으로 대응하라는 태도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며 “소송 결과가 나와서도 일방적으로 기다리라는 태도에 화가 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토지보상에 ‘토’도 몰랐던 어르신들


B씨는 덕은지구에서 작은 점포를 운영하던 70대 노인이다. B씨는 토지보상을 받고 3년이 지난 시점에 상가를 운영하던 원주민들에게는 소위 ‘상가 딱지’라고 불리는 상가입찰 우선권이 주어진다는 점을 알게 됐다. 

상가입찰 우선권은 개발지구 안에서 농사나 사업을 영위하던 주민들에게 생계 보상 차원에서 6~8평 정도의 상업용지를 특별 공급하는 입찰권이다. 통상 일반 분양보다 저렴하게 공급되기 때문에 향후 가격이 2~3배씩 뛰기도 한다. 

뒤늦게 ‘상가 딱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B씨는 신청에 나서려 했지만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신청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보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B씨는 LH에서 상가입찰 우선권과 관련한 우편을 받았지만 무슨 내용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쳐 버렸다.

덕은 지구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상 과정에서 B씨와 같이 보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노인들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B씨와 같은 경우도 30건에 육박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토보상도 상황은 비슷하다. 토지보상을 현금 대신 땅으로 받는 대토보상은 한강을 끼고 있는 덕은지구 특성상 알짜로 평가되지만 이마저도 일부 ‘꾼’들이 쓸어갔다는 주민들의 원망이 쏟아진다.

덕은지구 한 원주민은 “토지보상 절차나 방법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가 부족하다”며 “특히 나이가 많은 분들은 설명회를 열고 책자를 나눠줘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그러나 “LH의 토지보상 과정은 알아서 보상을 찾아가라는 식이라며 그러는 사이 진짜 투기꾼들만 보상을 챙길 수 있는 대로 다 챙겨간다”고 지적했다.

보상기준일과 관련한 법원의 판결문 내용

◇보상 기준일 바뀌었지만 보상은


보상 기준일은 토지보상의 중요한 기준점이다. 기준일에 따라 보상의 대상이 결정된다. 그런데 덕은지구의 토지보상 기준일인 공공 공람일은 A씨의 재판과정에서 변경됐다. 법원은 사업 지연과 중대한 계획 변경에 따라 보상기준일을 최초 공고일보다 4년이 지난 2012년 4월 13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보상기준일 변경에 따라 보상 대상은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됐다. 덕은 지구 주민들은 늘어난 보상 대상이 140명 이상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LH가 추가 보상에 대해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원주민들은 법원의 판결이 나고 LH에서 추가 보상에 대한 어떠한 안내도 받지 못한 것으로 말한다. 법원 판결에도 보상은 알아서 찾아가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덕은지구 한 원주민은 “LH는 토지가 강제수용된 원주민들을 피해자로 보지 않는 것 같다”며 “원주민을 피해자로 본다면 구제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상 기준일 변경에 따라 추가 보상해줘야 하는 부분도 모르는 사람들은 받지 못하고 넘어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결국 토지보상을 받으면서 느낀 점은 LH가 우리들을 도와주기 보다는 어떻게든 비용을 줄여보기 위한 대상으로 보는 느낌이였다”고 전했다.

한편 LH는 A씨는 물론 공고 공람일 변경에 따른 보상 부분에 대해 택지와 현금 등 다양한 보상방식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chokw@kukinews.com
조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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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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