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가르치면 '메갈 선생'인가요

페미니즘 가르치면 '메갈 선생'인가요

20~50대 현직 교사 3명이 털어놓은 교육 현실
"학교서 가르치지 않으면, 사회 바뀌지 않아
교내 페미니즘·젠더 이슈 관심도 높지만 교육 기회 부족"

기사승인 2021-05-26 06:00:01
그래픽=이희정 디자이너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페미니즘을 교육한 교사들을 처벌하라는 청원이 지난 5일 게시됐다. 청원인은 페미니즘을 정치사상으로 일컫고 ‘정치적 중립성을 지녀야 할 교사가 자신의 정치적 사상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려 한 것은 공분을 살 일’이라고 주장했다. 청원은 28만명의 동의를 얻어 정부의 답변을 받을 요건을 충족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 명시한 페미니즘의 정의는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다. 20~50대 현직 교사 3명의 도움으로 페미니즘 교육의 현주소를 파악했다. 인터뷰는 온라인으로 닉네임을 사용해 진행했으며 음미체(초등 6학년 담임), 보리과자(초등 4·6학년 교과), 백도라지(중등 3학년 담임)가 참석했다.

Q. 페미니즘은 교실에서 배워야 하는 주제인가요?

음미체:
대물림되는 불평등, 폭력, 갈등을 멈추려면 교실 안에서 페미니즘을 성찰해야 합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페미니즘은 막연한 여성우월주의가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아이들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나누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자아를 해석하는 일을 멈추게 만듭니다. 스스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피구를 무서워하던 남자아이에게 그것은 결코 잘못된 모습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것, 소심한 여자아이들이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도전하도록 돕는 것, 이게 혹자들이 비난과 색출의 대상으로 몰아가는 교실 속 페미니즘입니다.

보리과자: 당연히 교실에서 배워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공식적인 교육이 아닌, 사이버 공간과 사적인 대화를 통해서만 접하다 보면, 그 의미가 너무나도 쉽게 곡해되고 폄훼됩니다. 일부 비주류 집단의 편향된 사상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학교 바깥에서의 페미니즘이 나아가는 방향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이 아닙니다. 중등교사로 근무 중인 지인에게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논의하려고 하면 대뜸 ‘저 선생 메갈(메갈리아. 2017년도에 폐쇄된 온라인 페미니즘 커뮤니티 사이트)이냐’는 이야기가 나와 당황스럽다”는 고충을 듣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개념을 폄하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꿀 수 없습니다.

백도라지: 배워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인간의 역사는 곧 존엄과 평등을 지향해 온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불평등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페미니즘 교육도 그 일부에 해당합니다. 아이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배워야 불평등을 해소하고, 존엄과 평등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Q. 교실에서 페미니즘을 주제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나요?

음미체:
주제로 다룰 기회가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현재 교육과정은 젠더 문제를 다루지 않습니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간혹 양성평등 교육, 사춘기 성교육이 이뤄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젠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할애된 부분은 없습니다. 아이들 사이에 가끔 성차별 이야기가 나오면 ‘남자라서’ 또는 ‘여자라서’ 들었던 말들을 공유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토의하는 시간을 갖는 수준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영향도 있습니다. 위례별초 교사 사태 이후 교사들이 페미니즘을 언급하기 더 조심스러워진 것이 사실이에요.

보리과자: 아이들이 성차별에 대해 질문하거나, 교육과정에 관련 내용이 나오면 가끔 페미니즘에 대해 토의합니다. 제가 따로 교육 계획을 세워서 수업한 경험은 많지 않습니다. 평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자주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고, 닫힌 자세를 취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들도 있습니다.

백도라지: 수업 시간에 문학작품을 다루면서 종종 토의할 기회가 생깁니다. 과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이 겪는 사건과 과거 여성들의 삶을 함께 살펴보면서 차별의 역사와 성평등, 페미니즘의 가치에 대해 의논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Q. 아이들은 어떤 수준의 젠더 감수성을 가지고 있나요?

음미체:
 6학년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급격히 성장하는 시기라서 젠더 이슈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여자아이들 일부는 젠더감수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여자라서 안 된다고 하지 말자”고 말하며 체육활동이든, 발표든 모든 활동에 당당하게 나섭니다. 남자아이들 사이에는 ‘남자라서 억울하다’라는 생각이 흔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 아이들끼리 ‘너는 남자애가 왜 우냐?’라든지 ‘너는 여자애가 왜 시끄럽냐?’는 말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참, 이 얘기는 꼭 하고 싶었는데, ‘남자라서 무거운 우유팩을 나르니 불공평하다’는 지적은 유효하지 않습니다. 우유는 교실 문 앞까지 배달됩니다.
 
보리과자: 확실히 예전에 비해 나아지고는 있습니다. 아이들이 교구를 고를 때, 한 아이가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분홍색으로 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자 다른 아이들이 ‘여자도 파란색 좋아할 수도 있는데’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와 편견이 많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징병제도, 출산 육아, 직장 내 성희롱, 미투, 동성애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는 의논할 기회가 없기에 아이들의 젠더 감수성을 진단할 방법도 없는 것 같습니다.

백도라지: 개선의 여지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욕설 중에 ‘OO년’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 욕을 남녀 모두에게 사용합니다. 아이들에게 ‘OO놈’이란 말은 왜 사용하지 않는지 묻자, ‘OO놈’이 귀여움의 표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OO년이라고 해야 강한 어감을 줘서 속이 시원하다”는 부연설명도 나왔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봤더니, “별로 불편하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와 너무 놀랐습니다.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조차 남자와 여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염려됐습니다. 결국,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면 사회에 만연한 편견은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강화되는 것입니다.

Q.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를 대하는 교내 분위기는 어떤가요? 

음미체: 비교적 젊은 여자 교사들이 이런 주제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의견을 나눕니다. 이 주제에 적극적인 의견을 펴는 남자 교사는 만나본 경험이 없습니다. 대부분 학부모, 중장년층 교사들은 불편해하거나 무관심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꽤 많은 학부모들이 “여자 아이들이 너무 약아서 남자 아이들이 뒤처지거나 손해를 본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들에 대한 연민을 피력합니다. 반면 어떤 학부모들은 종종 “딸이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데,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까요?” 하고 질문해 옵니다. 

보리과자: 남녀 차별이 명확해 보이는 사안에 대해서는 개선이 이뤄졌습니다. 남자아이들이 1번부터, 여자아이들이 50번부터 번호를 부여받던 관습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녹색 어머니회 명칭도 녹색 봉사회로 변경됐습니다. 성평등에 대해서도 더 자유롭게 논의되는 분위기입니다. 동료 교사와 어떻게 하면 성평등 교육을 할 수 있을지 많이 이야기하게 됩니다. 연령대가 젊은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에 큰 관심을 보이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용되는 단어에 따라서 반응이 다릅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와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의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백도라지: 페미니즘과 성평등을 주제로 대화하기가 쉬워졌습니다. 아이들도 이 주제에 상당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를 제기하거나 의문을 표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동료 교사들도 과거에 비해 젠더 이슈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다만, 관심은 많은데 구체적인 교육 실천방안은 요원합니다. 기존의 교과과정을 진행하느라 성평등 교육은 뒷전으로 밀려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Q. 교사가 페미니즘 교육에 참고할 수 있는 학교·교육청 지침이 있나요?

음미체:
지침은 딱히 없습니다. 간혹 양성평등 교육 연수가 열립니다. 교육계에서 젠더 이슈 관련 문제가 불거지면, 그 때마다 초등성평등연구회가 역풍을 맞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어떤 학교가, 어떤 교육청이 페미니즘을 탐구하려고 나설 수 있겠습니까.

보리과자: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교육청 지침이나 교육 자료는 내려온 적이 있는 것 같긴 한데, 큰 의미가 있는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지침이 있다고 해도 실효성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필요성을 느끼는 교사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문서화된 지침보다는, 교사 대상 연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백도라지: 교사들을 대상으로 성평등교육 연수가 진행되긴 합니다. 교사가 아이들을 위해 성평등, 젠더 감수성 교육을 어떻게 실시하면 좋은지 구체적으로 탐구하는 연수가 자주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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