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쩔 수 없는 유교걸” 자조하는 MZ세대, 그 배경엔

“나도 어쩔 수 없는 유교걸” 자조하는 MZ세대, 그 배경엔

기사승인 2021-05-31 11:40:02
픽사베이

[쿠키뉴스] 최은희 기자 =# “맘에 들게 나온 사진 있는데 나시 입어서 SNS에 못 올리겠음. 나 OOO일까?”
# “동거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못 하겠음. 나도 어쩔 수 없는 OOO 인가봐”

빈칸 안에 들어갈 신조어는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유교걸’이다.

유교(공자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는 도덕 사상)와 소녀를 뜻하는 영어 ‘걸(girl)’이 합쳐진 단어다. 가수 이효리의 흥행 곡 제목인 ‘유고걸(U-Go-Girl)’에서 따왔다. 

이 신조어가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진 계기는 따로 있다. SBS 유튜브 채널 ‘스브스뉴스-문명특급’을 진행하는 방송인 재재가 지난해 1월  유고걸을 개사한 패러디 곡 ‘유교걸’을 공개하면서다. 노래에는 ‘제가 장녀인데, 재산 상속은 남동생한테 간다고요? 안돼!’라는 가사가 담겼다. 파급력은 컸다. 지난 25일 기준 조회수는 무려 137만이다. 댓글은 8400개에 달한다. 유교걸 노래는 많은 여성의 공감을 얻었다. 가부장제 부조리를 겪은 여성의 심정을 잘 표현했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유교걸은 젊은 여성 사이에서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18년 1월1일부터 2021년 5월24일까지 카카오톡 검색어 트렌드 통계를 분석했다. 유교걸은 지난해 1월 검색량이 급증한 뒤 꾸준히 검색되고 있는 단어다. 이 단어를 검색한 여성 비율은 73%다. 남성(27%)의 배가 넘는다. 20~30대 여성들이 모여있는 여초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간 대화에서도 유교걸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전문가는 신조어 인기 이면에 유교와 가부장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젊은 층의 인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단어) 여성은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욕구가 높다”며 “유교를 구시대적이고 바뀌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본인을 유교걸이라 정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은 정숙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사회 통념에서 자신이 어긋난 게 아닌지 확인하는 습관이 반영된 명칭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정 문화평론가는 “유교걸에는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수시로 검열하는 자신에 대한 자조적 시선이 담겼다”며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마음과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며 충돌하는 것”이라고 했다. 

옷차림, 귀가 시간부터 크게는 연애와 결혼까지. 여성들은 일상 곳곳에서 가부장제 틀에 익숙해진 모습을 실감한다고 말한다.

일부 여성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에게 받은 영향을 짚었다. 경기 용인에 거주하는 이모(28·여)씨는 “성인이 된 후에도 몸에 달라붙거나 노출 있는 옷차림은 피한다”며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교육의 결과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25·여)씨는 “통금시간을 어겼던 날 부모님께 혼났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며 “친구들과 외출 중에도 연락이 올까 봐 신경을 쓰게 된다. 10시 내로 귀가하는 게 습관이 됐다”고 토로했다. 

유교걸 단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여성들도 생겨났다. 수원에 거주하는 김모(25·여)씨는 “대중매체에서 여성이 흡연하거나 문신한 모습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경우를 많이 봤다”며 “나도 모르게 비슷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대학생 박모(24·여)씨는 “평소 친구들에게 ‘나는 유교걸이다’는 말을 자주 한다. 스스로 개방적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라며 “지금껏 학습되어 온 가부장적 관습이 이런 모순적인 상황을 낳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가부장제 문제점을 자각하고 바꾸고자 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며 긍정적 변화라고 평가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유교걸이라는 신조어가 많은 여성의 공감을 사고 있다. 가부장제에 젖은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어 “문제를 공론화하고 여성을 옥죄는 사회 고정관념을 없애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hoeun2311@kukinews.com
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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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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