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지영의 기자 =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증시에서 주식·채권 투자소득 등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고 있던 사실이 드러났다. 국세청이 국내 대형증권사 삼성증권에서 벌어진 외국인 투자자들의 탈세 정황을 잡아낸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증권 외에 다른 증권사들도 유사 거래 정황이 있어, 증권사 전체로 세무조사가 확대될 경우 수백억대 외국인 탈세 규모가 드러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국세청 세무조사국은 삼성증권이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맺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과세하지 않았던 세금을 추징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증권과의 계약을 통해 국내 주식·채권 등에 대한 배당금 상당액이나, 이자 등을 얻어갔음에도 조세법에 따라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내 조세법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배당과 이자소득에 대해서는 원천징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세금을 걷을 원천징수 의무자는 거래를 담당한 금융사다. 그러나 징수 의무자인 삼성증권 측에서 외국인의 투자소득에 대해서만 원천징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세금 회피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그들이 삼성증권과 맺은 TRS 거래가 있었다. TRS 계약은 신용파생 거래의 일종이다. 증권사 등이 투자자를 대신해 자산을 매입하고, 자산 가격이 변하면서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은 투자자가 책임을 지는 방식이다. 자금이 부족하거나, 규제에 걸리는 외국인 등이 해당 계약 거래를 통해 투자 편의를 보는 셈이다. 계약의 대가로 증권사는 TRS 거래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다.
삼성증권은 TRS 거래를 맺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투자에 따른 배당 상당액 및 이자 소득 지급 시 파생거래 관련 건으로 처리했다. 명목상 사업소득 또는 양도소득으로 처리되면 외국인은 국내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당국은 삼성증권의 거래 처리 방식이 실질과세 원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실질적으로 소득의 성격이 배당 상당액과 이자이기에 과세 의무에 따라 세금을 걷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질과세란 명목상의 소득자가 아닌, 실제로 소득을 얻어가는 주체가 따로 있을 경우 해당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원칙이다. 원칙에서는 세금을 부과할 때 소득이나 수익, 재산, 행위 또는 거래의 명칭이나 형식이 다르더라도 그 실질적인 내용에 따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실질과세 원칙에 따르면 소득 성격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게 맞다”며 “만약 외국인 대상으로 걷어야 할 세금을 걷지 않는다면 결국은 원천징수 의무자인 금융사가 물어줘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증권에서 터진 외국인 탈세 문제는 증권업계 전반으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TRS 거래를 통해 외국인에게 유사하게 세금을 면제해준 증권사들이 더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TRS 거래에서 계약 처리에 문제가 있었던 증권사들도 국세청의 주요 조사 물망에 올랐다. TRS 거래 자체는 위법이 아니지만, 해당 계약을 활용한 불법 행태가 반복되어왔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에는 TRS 거래 과정에서 17개 증권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KB증권과 삼성증권, 하나금융투자, DB금융투자, 미래에셋증권, 신한금융투자, NH투자증권, 신영증권, 메리츠증권, 한국투자증권, SK증권, 유안타증권, BNK투자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IBK투자증권, 현대차증권 등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여론에 불을 지필 사안인듯하다. 가뜩이나 외국인 공매도로 여론이 안 좋은 상황에서 세금까지 회피할 수단이 있었다는 것에, 국내 증권사들이 어떤 형태로든 협조 내지는 방임했다는 것에 분노할 것”이라며 “증권사들이 TRS 거래에서 수수료를 받으니 외국인 세금 처리에 관대하게 했거나, 계약상 그렇게 편의를 봐주도록 되어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하는 증권사들이 더 있다면 최대 수백억 이상의 세금이 해외로 줄줄 새고 있을 거라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삼성증권 관계자는 “당사에서만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증권사들도 유사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 문제와 관련한 향후 대응 방침에 대해서는 확인해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ysyu1015@kukinews.com / 사진= 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