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부로 취임 100일을 맞은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금융권 CEO들과 연이은 회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회동을 통해 정은보 원장은 취임 당시 공언했던 ‘친시장’ 행보를 약속했다. 금융권은 정 원장의 발언에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금융시민단체는 금감원이 본연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정 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지방은행장들과의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에는 정 원장을 비롯해 김광수 은행연합회장, 최홍영 경남·송종욱 광주·임성훈 대구·안감찬 부산·서한국 전북·서현주 제주은행장이 참석했다.
정 원장은 “금융감독원의 재량적 판단과 결정이 법과 원칙에 우선될 수 없다”며 금융사 규제보다 지원에 방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정 원장은 취임 당시부터 금융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규제, 사후 감독보다 사전 감독을 통한 리스크 예방 지원 정책을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정 원장은 이달 중순으로 예고됐던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잠정 중단하고 ‘먼지털기식’ 검사체계 개편을 약속했다. 그는 지난주 4대 시중은행 금융지주 회장과 진행한 간담회에서 “종합·부문검사로 구분되는 현행 검사 체계를 위험의 선제적 파악·사전 예방, 금융환경 변화에 유연한 대응 및 검사자원의 효율적 활용에 중점을 두는 ‘세련되고 균형 잡힌 검사 체계’로 개편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 검사 현장과 제재 심의 과정에서 금융사와의 소통을 확대하는 등 검사 처리 체계를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정비하겠다”며 “금융회사의 규모, 영위 업무의 복잡성 등 금융권역별 특성에 맞게 검사의 주기, 범위, 방식 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금융권에선 이같은 정 원장의 행보를 두고 엇갈린 평가를 내리고 있다. 먼저 금융사들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 재임 시절 금감원은 금융사들과 날카로운 관계를 이어갔다. 대표적인 예시가 ‘키코(KIKO) 사태’ 관련 발언이다.
키코사태는 풋옵션과 콜옵션을 1:2로 합성한 옵션거래의 특성에 비추어 옵션매수자인 은행이 옵션매도자인 기업들에게 지급해야 할 옵션프리미엄을 은행이 고객에게 알리지 않고 부당취득한 사건이다. 키코 사태와 관련해 법원에서 은행에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윤 전 금감원장은 부임 직후 재조사를 통해 6개 은행에 손실 배상을 권고했다.
또한 암 보험금 지급권고, 즉시연금 지급권고,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금융권CEO 중징계 등 다양한 소비자 보호 과제를 추진하면서 금융사들과의 갈등이 이어졌다. 금융사 입장에서 보면 정 원장의 친시장적 행보는 검사 부담을 비롯해 제재 리스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에 환영할 수밖에 없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금융소비자 보호에 역행하는 조치라며 정 원장을 비판하고 있다. 참여연대 등 5개 단체가 모인 금융소비자연대회의는 같은날 논평을 통해 “금감원의 수장이 금융감독 기조에서 후퇴하고 ‘금융회사 구하기’에 나서고 있어 자질이 의심된다”며 “소비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금감원 본연의 업무에 맞게 처신하라”고 지적했다.
금융정의연대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금융정의연대는 지난 8일 정 원장의 종합검사 개편 예고에 대해 “금감원이 감독과 제재라는 본연의 기능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금융소비자 보호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이어 “금감원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집단소송제, 징벌적손해배상제 등 더욱 강한 조처를 하는 것”이라며 금감원의 감독 기능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금융시민단체의 우려에 대해 정은보 원장은 “사후 감독의 핵심 사항인 종합 검사에 대한 폐지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 사전적 검사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더 강화를 해 나갈 계획”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정 원장은 “금융 소비자들에 대한 부분과 관련해서는 우선 상품의 설계나 제조나 판매 단계 전 과정에 걸쳐서 사전적인 방법 그리고 또 그런 부분과 관련해서 예방적 검사는 당연히 확충해서 소비자 피해가 사전적으로 예방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둘 생각”이라고 설명헀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