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청장 김현모)과 함안군(군수 조근제)은 지난 11일 함안 말이산 고분군 75호분 발굴조사에서(조사기관 :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가야문화권에서는 처음으로 5세기 중국 남조에서 제작된 연꽃문양 청자그릇〔中國製 靑磁 蓮瓣文 碗〕이 발굴됐다고 밝혔다.
가야문화권 내에서 중국제 청자가 발굴된 것은 백제문화권과 가까운 남원 월산리고분군에서 계수호(鷄首壺)가 발견된 예는 있지만 가야의 중심권역에서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발굴조사는 말이산 고분군의 체계적 정비와 보존관리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7월부터 가지 능선 끝자락에 있는 75호분을 대상으로 시작되었는데, 지름 20.8m, 높이 3.5m의 봉분을 걷고 11매의 덮개돌을 들어내자 길이 8.24m, 너비 1.55m, 높이 1.91m의 대형돌덧널무덤이 확인됐다.
동서로 긴 사각형 형태의 돌덧널무덤은 가운데 무덤 주인의 공간을 기준으로 서쪽에 유물 부장공간을, 동쪽에는 순장자를 배치하는 말이산 고분군의 전형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 있었다.
연꽃무늬 청자는 서쪽 유물 부장공간에서 무너진 돌덧널의 벽석(얇은 널빤지로 다듬은 장식용 돌을 들어내자 구경(口徑,원통 모양으로 된 물건의 아가리의 지름) 16.3cm, 높이 8.9cm, 저경(底徑,그릇의 밑바닥 지름) 7.9cm 크기의 거의 완형에 가까운 형태로 출토됐다.
안쪽 8개, 바깥쪽 8개의 연꽃잎이 겹쳐져 청자를 감싸고 있는 형태로 오목새김과 돋을새김(음각·양각기법)을 모두 사용해 입체감이 있다.
이러한 형태는 5세기 중국 유송(劉宋)대 청자 그릇의 대표 형태이다. 중국 강서성(江西省) 홍주요(洪州窯)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중국 출토품과 비교해도 최상품으로 여겨진다.
국내 유사 사례로는 천안 용원리 고분군 C지구 1호 석실분 출토품을 들 수 있다.
중국에서 출토된 남조의 송(宋)대 402년(영초 원년(永初 元年) 출토품과 474년(원미(元微) 2년) 출토품과 비교·분석한 결과 제작 시기는 474년을 전후한 시기인 5세기 중후반 경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돌덧널무덤의 북쪽 장벽에서는 말이산 고분군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인 목가구시설(돌덧널무덤의 장벽과 단벽에 나무기둥을 걸어 무덤 내부를 보강하는 시설)의 흔적도 확인되었고, 큰 칼 2점, 쇠창, 쇠도끼, 금동장식 화살통, 화살 등의 무기류와 말갑옷, 등자(鐙子, 발걸이), 안교(안장), 기꽂이 등의 말갖춤새 일괄, 금동제 허리띠장식, 큰항아리, 그릇받침, 굽다리접시 등 50여 점의 토기류도 함께 출토됐다.
출토된 유물과 유구를 볼 때 무덤은 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라가야 최고지배층 묘역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중국 남조(南朝) 최고급 청자가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5세기 후반 중국 남조(南朝)와 아라가야가 교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라국왕 하지가 남제(南齊, 479~502)에 사신을 파견해 조공하고 보국장군(輔國將軍) 본국왕(本國王)의 작위를 받았다는 남제서(南齊書)의 ‘동남이열전(東南夷列傳)’ 기록에서 기존의 대가야를 지칭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 ‘가라왕 하지(加羅王 荷知)’를 아라가야 왕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본다.
함안군 조신규 가야사담당은 “함안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가야유적이 분포한 곳으로 가라왕 하지가 남제(南齊)에 사신을 파견한 479년 무렵 아라가야에서는 대규모 왕성(사적 제554호 함안 가야리유적)이 만들어지고 말이산 13호분과 같은 왕묘급 고분이 조영되는 시기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연꽃무늬청자의 출토는 남제서의 기록을 반증하는 중요한 자료”라며 “향후 주변유적과 고환경 등 입체적 조사를 통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아라가야의 위상과 실체를 규명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의 자세한 성과와 출토유물은 11~12일 양일에 걸쳐 일일 2회(오전 10시, 오후 2시) 현장에서 공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말이산 고분군 남문외1호분과 가야산성으로 알려진 안곡산성 발굴조사 현장도 함께 공개할 예정이다.
함안=최일생 기자 k755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