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도 최근 ESG 경영이 트렌드가 되고 있으나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이 가운데 전통적인 가치투자 방식과 ESG가 융합한 새로운 행동주의 사모펀드가 주목받고 있다. 바로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이다. 이채원 의장은 국내 가치투자 1세대 대가로 유명하며, ‘이채원 키즈’라는 수많은 가치투자 매니저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가치투자 펀드인 ‘밸류 이채원 펀드’를 개발 운용했고, 2000년부터 2006년까지 6년 간 무려 435%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당시 종합 주가 지수의 상승률이 56.4%에 그쳤다는 것을 감안하면 가치투자가 한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다만 지난 몇 년 간 성장주 중심의 기업들이 시장에 주목을 받으면서 가치주 중심의 기업들은 외면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절치부심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가치투자라는 철학을 고수하면서도 전략은 다소 업그레이드 했다. 단순히 저평가된 성장 종목을 투자해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기업과 소통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라이프자산운용이 출시한 ESG 행동주의 사모펀드도 바로 이채원 의장의 투자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쿠키뉴스는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과 인터뷰를 통해 그의 투자전략과 국내 자본시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ESG 가치주 펀드, 우호적 행동주의로 기업과 동반자 역할 기대”
이채원 의장이 라이프자산운용으로 발길을 옮긴 데에는 정통 가치투자 방식에서 좀 더 진화해야 한다는 반성에서 비롯됐다. 재무제표와 밸류에이션에 의존하는 정통 가치투자는 변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 때문이다.
이 의장은 “그동안 정통 가치주의 주가가 부진했던 것은 성장주 사이클도 있었지만 ESG 요소가 취약했기 때문”이라며 “성장 가능성 있는 기업 중에서도 여전히 지배구조가 불투명하고, 상속 때문에 주가 상승을 원하지 않는 기업도 있다”며 “ESG 행동주의 펀드는 기존의 가치투자 방식에서 벗어나 변화를 모색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이프자산운용이 지향하는 행동주의는 기존의 적대적 방식의 투자가 아닌 기업과 함께 하는 동반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의장은 “성장 가능성은 있지만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를 제안한 뒤 이를 회사가 수락할 경우 투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며 “기존의 행동주의 사모펀드와 달리 해당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다. 때문에 지분을 매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업 성장을 위한 경영 자문도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저평가된 기업도 변할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성장할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SK그룹의 계열사 SKC는 지난해 세계최대 전기차 배터리 핵심부품인 동박 생산업체 케이씨에프테크놀리지스(KCFT)의 인수하면서 신성장 사업의 대표주자로 성장했다.
이 의장의 이 같은 실험은 현재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ESG 펀드 운용 자금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회사 성장과 함께 사옥 규모도 커졌다. 최근 나온 3호 펀드까지 전체 운용 자금은 약 1000억원에 달한다.
◇ “장기투자 위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해야”
코로나19 이후 강력한 유동성으로 코스피 지수가 3000선을 넘기도 했으나 여전히 한국 시장은 장기투자하기 쉽지 않은 시장이다. 우스갯소리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한국에서 개인투자자로 활동했다면 ‘깡통을 찼을 것(손실로 인한 주식포기)’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바로 지배주주가 일반주주 보다 훨씬 높은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한샘의 창업자이자 최대주주 조창걸 명예회장과 특수관계자는 지분 37.8%를 약 1조4500억원에 사모펀드(IMM PE)와 롯데에 매각했다. 당시 한샘의 시가총액이 약 2조6800억원이엇던 것을 감안하면 경영권 프리미엄 4000억원을 더 받고 매각한 것이다. 하지만 매각 이슈로 주가가 흔들리자 매도 시점을 놓친 개인들만 손해를 봤다.
이에 대해 이채원 의장은 “그동안 국내 기업도 꾸준히 이익 성장을 이뤄냈다”고 하면서도 “다만 미국 등 해외시장과 비교하면 투자자들이 장기간 긴 호흡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열악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시장이 저평가 된 것은 일반 주주를 위한 투자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탓”이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상법개정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상법 382조 3항 ‘이사회 충실의무’에서 ‘이사는 회사를 위해 일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바꿔 말하면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 법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채원 의장은 “현재 상법 382조 3항에 명시된 내용을 ‘회사와 주주를 위해 일한다’라고 조항을 바꾸면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M&A(인수합병)을 추진할 때에도 시가합병배정이 아닌 공정가로 합병해야 하며, 대주주의 경영권 프리미엄 이익의 독점을 줄이기 위한 ‘의무공개매수제도’ 역시 재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M&A 목적으로 주식을 사들일 때 일정 비율 이상의 매수를 의무화하는 제도다. 이는 지배주주의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방지하기 위한 법적 장치다. 하지만 지난 1998년 IMF(외환위기)가 터지자 M&A를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폐지된 바 있다.
자사주 매입 소각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현재 애플, 버크셔해서웨이 등 미국의 주요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 소각을 꾸준히 하고 있다. 미국 S&P500지수에 속한 상장 기업들은 올해 들어 7월까지 자사주를 약 6830억달러(약 790조원)를 매입했다.
장기투자를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주식시장에서 기업 투자는 언제나 그랬듯이 좋은 주식을 적절한 가격에 사는 것이 좋다”며 “2000년 초반 대한민국 최고 우량주로 불리던 KT는 지금 7분의 1토막이 났다. 결국 좋은 기업이라도 10년 이후 경쟁력 있는 업종의 기업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무조건 저평가된 주식을 매수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양산업에 속한 기업들은 지양하고 펀더멘탈 외적 요인으로 저평가된 기업을 골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