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야구팬의 분노가 트럭 시위로 번지고 있다.
최근 스포츠계에서는 팬들의 트럭 시위가 이목을 끌고 있다. 트럭 전광판에 하고 싶은 말을 띄우는 방식으로, 구단 모기업 외에도 행인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돼 파급력이 상당하다.
지난 6월 학교 폭력 논란을 빚은 이재영·이다영 자매가 원소속팀 흥국생명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수많은 배구팬들은 이들의 복귀에 반대해 트럭 시위에 나섰다. 여론을 이기지 못한 구단은 자매를 포기했다.
지난달에는 IBK기업은행 팬들이 조송화, 김사니 코치 등의 무단이탈과 구단의 졸속 운영에 비판하는 트럭 시위를 진행했다. 기업은행 본사와 구단의 홈경기장인 화성실내체육관 등에 트럭이 동원됐고, 구단은 조송화를 자유계약 선수로 방출했다. 김 코치와는 결별 수순을 밟았다.
이같은 흐름이 최근엔 야구계로 번지고 있다. 몇몇 구단이 이적 시장에서 선수 보강에 인색한 모습을 보이자 일부 팬들이 트럭 시위를 통해 불만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시작은 한화 이글스였다. 한화는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외부 FA(자유계약선수) 영입에 참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때마침 나성범, 박건우, 김재환, 박해민, 김현수, 손아섭 등 대어급 외야수들이 대거 시장에 나왔다. 이들은 리그 정상급 실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경험이 있어 젊은 한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원들이었다.
예상과 달리 한화는 ‘집토끼’인 포수 최재훈을 5년 총액 54억 원에 붙잡으며 1호 계약을 성사시켰지만, FA 시장의 과열 양상과 내부 선수 육성을 이유로 외부 영입 FA에서 철수했다. 여기에 최근 정민철 한화 단장이 FA 영입과 관련해 농담조로 이야기 했다는 한 매체의 보도가 나오면서 불에 기름을 부었다.
이에 한화 팬들은 구단을 향해 강하게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고, 한화가 소유한 서울 영등포구의 63빌딩 앞과 여의도 일대에서 트럭시위를 했다. 한화 팬들은 트럭에 ‘김승연 구단주님! 우리는 더 이상 보살이 아닙니다’ ‘투자없는 리빌딩은 리빌딩이 아닙니다’라는 문구로 항의했다.
결국 한화 구단 측은 지난 15일 구단 공식 SNS를 통해 “한화에 대한 애정을 보내주시는 팬 여러분께 감사와 함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전한다”며 “한화는 따뜻한 응원과 발전적인 질책을 보내준 모든 팬 여러분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팬 여러분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한화에 이어 최근엔 두산 팬들도 트럭 시위를 진행했다.
‘베어스 팬 일동’이라고 소개한 팬들은 20일 성명문을 통해 “두산 베어스 팬 일동은 모기업 두산그룹 회장인 박정원 구단주와 전풍 사장, 김태룡 단장을 비롯한 팀 프런트 일동에게 저희의 입장을 성명문으로 밝히고자 한다”며 “많은 베어스 팬들의 의견을 취합해 두산 구단주에 팬 일동이 바라보는 우려스러운 상황을 전한다"고 말했다.
두산은 최근 많은 선수들이 FA로 팀을 떠났다. 양의지(NC), 김현수(LG), 민병헌(롯데), 오재일(삼성), 최주환(SSG), 이용찬(NC), 이원석(삼성) 등을 다른 팀에 내줬다. 자금력에서 다른 구단에 밀리는 탓이다. 올해는 박건우를 NC에 빼앗겼다. 김재환을 4년 115억원에 눌러 앉혔지만 팬들의 불만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트럭 시위를 통해 이들은 ‘구단주는 적극적인 투자를 펼치거나, 불가능할 경우 구단 매각을 고려할 것’, ‘구단 수뇌부와 프런트는 팬들을 기만하는 언론 플레이를 멈추고 필요한 대처를 보일 것’, ‘구단 프런트는 소통의 창구를 마련하고 팬들의 의견을 수렴 및 반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서울 잠실구장과 동대문 두타몰 광장 등에서 1차 트럭시위를 벌인 데 이어 20일부터 오는 23일까지 4차례 더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한화와 두산 이외에도 삼성, kt 등 여러 구단 커뮤니티에서도 트럭 시위를 위한 모금을 진행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이들 역시 FA가 주된 이유다. 삼성은 FA에서 팀의 테이블세터인 박해민을 LG에 내줬다. kt는 외부 FA 영입 참전 의사를 밝혔지만 사실상 실패했고, 내부 FA 협상도 아직 진행 중이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