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헌재)는 23일 오후 2시 현행 고용허가제가 인간의 존엄·가치·행복추구권과 근로의 권리 등 기본권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헌법소원 청구는 기각·각하됐다. 재판관 의견은 7 대 2로 갈렸다.
현행법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사업장을 3회까지 변경할 수 있다.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로 근로계약을 해지한 경우 △사용자가 근로계약 만료 후 갱신을 거절하는 경우 △사용자의 휴업·폐업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또는 부당한 처우 등에 한정된다.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등 이주노동자의 책임이 아닐 때는 사업장을 변경한 경우에 포함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와 국내 시민사회단체는 사업장 변경 제한이 부당하다고 봤다. 이주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직장을 바꾸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7년에는 네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 불가 등을 비관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헌재는 사업장 변경 제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중소기업의 안정적인 노동력 확보와 내국인 노동자의 고용기회·근로조건 교란 방지, 이주노동자에 대한 효율적 고용 관리 등을 이유로 들었다. 헌재는 “자유로운 사업장 변경 신청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고용허가제를 취지에 맞게 존속시키기 위한 필요한 제한이다. 엄격한 사유를 요구하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며 “명백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 직장 선택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이석태·김기영 재판관은 “해당 조항은 이주노동자의 직장 선택 자유를 침해한다”며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사업장 변경 사유로 정하고 있는 근로조건 위반이나 부당한 처우만으로는 직장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기에 현저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와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은 헌재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소송을 대리한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헌재는 한국에서 가장 열악한 일을 하면서 사업장이라도 옮길 수 있게 해달라는 이주노동자의 외침을 외면했다. 그만두지 못하는 직장이 제대로 된 일자리일 수 없다”며 “헌재는 지난 2011년 판결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 했다”고 질타했다. 헌재는 2011년에도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 횟수를 3회로 제한한 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주노동자들도 목소리를 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노동자의 권리는 출신국가에 따라 다를 수 없다. 헌재는 잘못된 법을 개선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판결해야 한다”며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한국인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오늘의 판결이 이주노동자를 더 열악하게 만들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이야기했다.
섹알 마문 이주노조 부위원장도 “화가 난다. 오늘의 판결은 이주노동자들에게 ‘현장에서 죽어라’, ‘성희롱 당해라’, ‘임금차별 받아라’라는 말과 같다”며 “이주노동자 문제의 90%는 직장 이동의 자유가 없어서 생긴다. 힘들어도 임금체불을 당해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