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노는 것도 싫고 의욕도 없는 우리 아이, 괜찮은 걸까요?"
경기도 안양시에 거주 중인 주부 김모씨(44)는 최근 예비 초등 3학년인 아이 때문에 걱정이다. 평소 집에선 활달했던 아이가 밖에서 만난 친구와 데면데면하거나 다투는 일이 늘었기 때문이다. 학원을 마치고 곧장 집에 돌아와 누워만 있거나 짜증을 내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아이들의 우울감, 스트레스, 의욕 저하와 사회성 결여 등을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 아이들이 외부 활동과 대면 활동에
제약을 받으면서 3년째 상당 부분 단절된 생활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초등 3학년 이상은 밀집도 제한에 따라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을 병행해야 했다. 그나마 초등 1·2학년은 매일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대면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마스크를 써야하는 데다 감염 우려로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말 한마디 섞기 힘들었다.
예비 초등 3학년 자녀를 둔 이모씨(37)는 "1학년 입학과 함께 시작된 코로나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아이가 제대로 친구를 사귈 틈이 없었다"라며 "놀이터에서 함께 뛰어놀거나 소통을 하는 등 친분을 쌓을 기회가 적다 보니 유치원 친구들에서 교우관계가 멈췄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며칠 전 유치원 때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노는데 친구와 다투고 해결해야 할 방법을 찾지 못하더라"라며 "코로나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친구와 상호작용을 하며 함께 해결점을 찾는 것보다 '혼자 노는 게 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온라인 맘카페에도 김씨, 이씨와 같은 걱정을 하는 학부모들이 많다. "코로나 시대 아이들 교우관계 어떠냐" "감염 우려해 학교·학원만 교우 보냈는데 이러다 왕따되면 어쩌나 걱정" "학교가 재미없다는 인식이 커져서 등교할 때 힘들어했다" "학년별로 성장해 나가면서 배우는게 있는데 코로나로 기회가 없었으니 안타깝다" "초등 1학년 때부터 시작된 코로나 사태에 아이의 생각과 행동이 아직도 유치원 수준이 머무는 듯" 등 고민 글이 잇달았다.
실제로 교사 상당수가 코로나19로 교우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학생들의 사회성 저하를 가장 걱정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해 4월26일부터 5월5일까지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대학 교원 7991명에게 '코로나19로 우리 공교육이 봉착해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를 꼽아달라'고 질문하자 응답자 중 가장 많은 2808명(35.1%)이 '학생간 교유관계 형성 및 사회성·공동체 인식 저하'를 꼽았다.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들도 학습 결손보다 아이들의 사회성 저하를 더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우울감을 호소하는 아이들도 늘었다.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여성가족부로 제출받은 '청소년 1388 상담건수'에 따르면 작년 8월까지 '정신건강' 항목의 상담건수는 월 평균 1만7683건이었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에 비해 30%가량 증가한 수치다.
아이들이 공황장애나 우울 관련 질병으로 진단 받은 수도 늘었다. 신현영 의원이 공개한 '건강보험 특정 질병별 진료현황'에 따르면 10대 공황장애 환자는 지난해 상반기 기준 2481명이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상반기(1724명)와 비교하면 43.9% 늘었다. 같은 기간 우울 관련 진단을 받은 10대 환자도 6.8% 늘었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선 3월 신학기는 전면 등교를 희망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오미크론 변이 대확산으로 인해 올해도 원격수업 병행 등이 실시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이다.
오미크론 확산세가 거센 해외 사례도 비슷하다. CNN은 최근 미국 영국 중국 캐나다 일본 등 11개국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아이들은 학교 폐쇄 및 사회적 폐쇄로 불안, 우울증, 신체활동 저하, 불안정한 식사 등 정신 및 신체 건강에서 많은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휴교로 아이들의 신체활동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고 이로 인해 소아 비만이 약 11% 증가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으며, 캐나다와 영국의 청소년 약 4분의 1은 우울감을 보였다. 이 연구는 최근 미국 의사협회 저널 자마소아과학(JAMA Pediatrics)에 소개됐다.
캐나다 캘거리대 아동 발달 부교수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셰리 메디건은 "원격학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이들의 정신건강에 주요한 자원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학교는 친구들과의 상호작용과 교사와의 관계, 공동체 의식 등 정말 중요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박물관 등을 견학가는 것, 친구를 집에 초대하거나 눈 속에서 뛰어노는 것, 친구들과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방법 등을 찾아야 한다"며 안정적인 일상이 코로나 사태로 많은 것을 잃은 아이들의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