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겠다’며 세입자를 내보낸 뒤 주택을 매도한 집주인이 세입자와 분쟁에서 승소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임대차법에서는 집주인이 실거주를 하겠다고 한 뒤 다른 세입자를 들이는 경우에 한해 손해배상 책임을 물고 있을 뿐, 집을 매각하는 경우는 포함하고 있지 않아서다.
대한법률구조공단 및 법무법인 명도 등에 따르면 집주인이 실거주 목적으로 계약갱신을 거절한 뒤 제3자에게 해당 아파트를 매도한 경우, 세입자가 집주인에 대해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손해배상의무 및 일반불법행위책임을 물은 사건에서 세입자 패소 판결이 나왔다.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를 내보낸 뒤 주택을 매도할 경우 세입자 보호가 어렵다는 유권해석인 셈이다.
앞서 집주인 A씨는 본인이 실거주를 하겠다는 이유로, 임대차기간 만료 전 세입자 B씨의 갱신요구권 행사를 거절했다. B씨는 이에 동의하고 집을 비워줬다. 하지만 A씨는 전입신고 후 7개월 간먼 실거주한 뒤 해당 아파트를 제3자에게 매도했다. 뒤늦게 소유자가 변경된 사실을 확인한 세입자 B씨는 A씨에게 신규 임대차 중개수수료, 포장이사비용, 신규 임대차계약 체결에 따른 보증금증액분에 대한 환산 비용 등을 산정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수원지방법원 용인시법원 소액사건 전호재 판사는 소액사건심판법 제11조의2 제3항에 따라 판결이유를 기재하지 아니한 채 세입자 B씨의 청구를 기각하고 집주인 A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임대가 아닌 매도의 경우 해당 사항이 없다’며 손해배상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실제 집주인이 제3자에게 집을 매각했을 경우 임대차법 위반이 될 수는 있지만 손해배상에 해당하는지가 명백하지 않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5항에 따른 손해배상책임 발생요건으로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하고, 2년 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에게 목적 주택을 임대한 경우’로 규정되어 있다. 사례에서처럼 ‘다른 사람에게 해당 주택을 매도한 경우’는 포함되지 않고 있다.
임대차법이 시행됐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세입자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임대차법을 적용하지 못하고 민법으로 손해배상을 받더라도 손해액을 얼마나 산정할지도 불분명하다. 임대차법에서는 △갱신계약 당시 월 단위 임대료 3개월분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를 들여 추가로 더 받은 임대료를 월 단위로 환산한 금액의 2년치 △갱신거절로 세입자가 입은 손해액 중에서 큰 금액으로 정하고 있다. 다만 이는 제3의 세입자를 들일 경우에 해당할 뿐, 주택을 매도한 경우는 아니다.
이상옥 변호사(법무법인 명도)는 “국토교통부와 법무부에서 발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해설집 및 주택임대차분쟁 조정사례집에서는 세입자가 집을 나간 뒤 2년 내에 정당한 이유 없이 집을 팔면 민법상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는 해석이 제시된 바 있다”면서 “만일 이 사건과 같이 임대인이 2년 내에 매도한 경우, 아무런 철퇴를 가하지 않는다면 임차인 보호에 중대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의 과정, 입법취지 및 위와 같은 정부의 해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임대인이 실거주 목적으로 갱신거절한 후 2년 안에 매도한 경우를 임대한 경우와 달리 평가할 이유나 필요성이 없으므로, 임대인인 A씨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