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자산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다. 코로나 대출 뿐만 아니라 가계부채 문제, 인플레이션에 따른 미국발 긴축과 같은 대내외적인 상황을 고려해 부채 관리에 전념했다. 하지만 당국의 이 같은 기조는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 이해관계로 인해 다시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부채구조조정이 늦어질 경우 자산시장 버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코로나 대출 만기연장 재연장에 대해 다소 우려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이달 22일 다음달 말 종료하려고 계획했던 대출 만기연장·이자 상환유예를 재연장한다고 밝혔다. 3월에 종료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다. 금융위 측은 “코로나19 변이 재확산으로 방역조치 완화가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고 여·야합의에 따른 부대의견 취지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은행권은 상환 유예가 능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A은행 관계자는 “당국 입장에서는 소상공인의 현실을 감안해 유예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하면서도 “하지만 현재까지도 상환 유예를 신청한 차주들이 과연 이후에도 대출을 갚을 능력이 될지는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관계자는 “사실 상환 유예는 각 차주의 역량에 따라 결정된다. 상환 능력이 있는 차주들은 이미 밀린 대출이나 이자를 갚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최소한 연착륙을 위해 (거치식이라도) (원금) 분할 상환은 점진적으로 진행했어야 했다”며 “원금 상환을 미루다 보면 차주의 신용도를 판단하기 어렵고, 결국 (부실채권으로 이어지는) ‘폭탄 돌리기’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5대 은행이 약 2년 동안 코로나19 지원책의 일환으로 상환 등을 미뤄준 소상공인·중소기업의 대출 원금과 이자만 140조원이 넘는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코로나19 금융 지원 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원이 시작된 이후 올해 1월 말까지 납기가 연장된 대출과 이자의 총액은 139조4494억원에 이른다. 만기가 연장된 대출(재약정 포함) 잔액은 모두 129조6943억원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상당수 자영업자들의 정부 정책 및 금융의존도는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20년 결손을 신고한 사업체는 전체 사업자의 8.6%에 불과하다.
그동안 금융당국 수장들은 올해 금융 현안에서 가계부채 관리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14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직후 “글로벌 긴축시계가 앞당겨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상승 추세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며 “가계, 기업 등 경제주체들은 저금리가 상수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금리상승 국면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 스스로 상환부담 증가에 대비해 ‘갚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빌리고, 조금씩 나눠 갚는 관행’을 통해 불필요한 부채는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위원장이 경고한 것처럼 현재 국내 가계부채 비율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103%를 웃돈다. 전문가들은 주택시장 과열 이 1년 이상 지속될 경우 2023년 말 국내 가계부채 규모는 4000조원(GDP 대비 192%)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하지만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이러한 당국의 부채 관리 정책에 엇박자가 생기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승범 위원장이 부채 관리에 대한 원칙을 깬 것은 정치권의 입김 때문”이라며 “오미크론 확산이라는 명분은 있지만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시그널은 아니다”고 우려했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