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계약한 집 맞아?”...깨알 글씨에 무너진 ‘꿈’[들어봤더니]

“내가 계약한 집 맞아?”...깨알 글씨에 무너진 ‘꿈’[들어봤더니]

나만의 당구장, 골프연습실, PC방 꿈꿨지만
실상은 오수관 파이프와 습기 가득한 지하
계약서 깨알 같은 글씨 '지나갈 수 있다' 함정

기사승인 2022-02-25 06:00:06
모델하우스(좌측)와 실제 분양받은 주택(우측) 모습.   독자 제공 

선분양 체제에서 분양받을 주택의 모습을 확인할 길은 모델하우스 밖에 없다. 하지만 모델하우스 모습을 기대하며 입주해 둘러본 주택 모습에 한 숨을 내쉬는 이들이 많다. 특히 인테리어로도 매울수 없는 간극이 있다면 ‘속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같은 사례로 피해를 호소하는 이의 이야기를 24일 들어봤다. 

제보자인 A씨는 최근 공양시 삼송지구에 들어선 타운하우스 ‘우0라피아노’에 입주했다. 타운하우스는 기존 주택과 아파트의 장점을 결합한 형태의 주거 공간으로 주택처럼 다양한 공간 설계가 가능한 동시에 아파트처럼 여러 가구가 단지를 이뤄 공동생활을 지원하는 주택 형태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파트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던 A씨는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타운하우스에 관심이 갔다. 이에 모델하우스를 방문한 A씨는 ‘나만의 특화공간’ 부분에 매력을 느껴 분양을 받기로 결정했다. 현장에서는 1층 입주자에게 지하공간을 제공하고 지하공간을 와인바나 서재, 골프연습실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홍보했다.

A씨의 기대는 입주와 동시에 무너졌다. 실제 둘러본 지하공간은 그의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이였기 때문이다. 

A씨는 “지하의 문을 연 순간 기가 막혔다. 천정 가득 배관이 들어차 있는데다 습기가 가득했다. 지하에는 건설사가 설치해놓은 공업용 제습기가 돌아가고 있었다”며 “일반 가정용 제습기도 아닌 공업용 제습기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공간에 습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천장엔 배관이 가득한 덕분에 층고가 낮아서 골프연습실 만들었다간 골프채를 휘두르다 배관이 다 터질 지경이고 배관에서는 소음이 크게 발생되고 있었다”며 “배관의 정체는 오수관이었다. 윗층세대의 화장실 등에서 발생하는 생활오수가 흘러내려오는 각종 오수관들이 천장에 가득했다”고 말했다.

A씨를 비롯해 130가구가 넘어가는 1층 입주자들은 건설사에 항의는 물론 법적 대응을 검토했다. 내용증명을 발송하고 변호사의 자문을 받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기대에 못 미쳤다. 변호사는 ‘건설사와의 법적 싸움은 이기기 쉽지 않다’는 조언을 건넸다. 특히 알아보기 쉽지 않은 작은 글씨로 계약서에 적혀있는 ‘배관이 지나갈 수 있다’는 문구가 발목을 잡았다.

모델하우스(좌측)와 실제 분양받은 주택(우측) 모습.   독자 제공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하공간을 두고 주민들간 관리비 문제가 불거졌다. 지하공간이 실질적으로 배관 및 배관 관리를 위해 개인 공간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관리비는 1층 입주민들에게 모두 부과된 것. 

A씨는 “지역난방으로 난방비가 포함되어있고 겨울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지난 1월 51만원의 관리비가 나왔다”며 “3~4층 관리비는 30만원 수준으로 1.5배가 넘는 관리비를 1층에서 내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1층 입주민들은 건설사에서 처음 결정한 관리비가 부당하다고 항의하며 조정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다른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오라는 답변 이었다. 하지만 관리비를 나눠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다른 층 입주민들이 조정에 반대하면서 이마저도 좌절됐다. 

A씨는 “저의 생활은 지금 지옥이 됐다. 윗집 아랫집 나눠서 관리비로 싸움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라며 “남북 대치 상황도 아니고 위 아래로 나눠 관리비 때문에 같은 입주민들이 원수가 됐다. 이 싸움의 시작은 관리비를 불평등하게 나눠놓은 00건설사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해당 타운하우스를 직접 시공하고 분양에도 참여한 00건설사는 사전에 충분히 설명했다는 입장이다. 00건설 관계자는 “모델하우스에 배관과 같은 중요사항은 글로 적어서 설치해 놓는다”고 해명했다. 이어 관리비에 대해서는 “입주 후 관리비 조정은 주민 동의를 받아 지자체에서 가능한 부분이라 주민 동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약관법을 적용해 계약 무효를 주장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엄정숙 부동산전문 변호사는 “약관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정형적인 계약을 말하며, 약관법 적용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약관법을 보면 고객에게 중요한 내용일 경우 설명의무가 있고, 계약자에게 불리한 내용일 경우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면 무효를 주장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여기에 기업윤리 차원에서 건설사가 일부 보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배관이나 기둥으로 수분양자가 피해를 호소할 경우 “기업윤리나 고객만족 차원에서 건설사가 보상 방안을 고려해 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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