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넘도록 5000만원으로 고정됐던 예금자 보험 한도 상향 논의가 시작됐다. 그간 한국의 경제규모가 성장한 만큼 예보 한도를 높여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금융권에선 예보 한도 상향에 따른 비용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23일 예금보험공사와 전문가, 각 금융권 협회와 함께 ‘예금보험제도 개선을 위한 전문가·금융권 간담회’를 영상회의로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는 김태현 예금보험공사사장과 5대 금융협회장, 학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이날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경제규모 및 금융자산 보유 확대 등으로 예금보호 한도의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금융산업과 환경 변화에 발맞춰 예금보험제도 또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금보험제도란 금융사가 영업정지나 파산으로 예금자에게 예금을 돌려줄 수 없는 경우 예금보험공사 금융사 대신 보호 한도 내의 금액을 지급하는 제도다. 예금보험공사는 금융회사들로부터 보험료를 받아 기금을 조성한다. 현재 보호 한도는 예금자 1인당 5000만원이다. 이는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상향된 2001년 이후 22년째 그대로 유지됐다.
이같은 예보제도는 국내 경제규모가 확대되고 금융업권 환경이 변한 만큼 한도가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예금자 보호한도는 1.34배로 주요 7개국(G7)의 1인당 GDP 대비 보호 한도 평균인 2.84배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달러화 기준 한국(4만2373달러)의 GDP와 비슷한 이탈리아(11만3636달러)와 비교해도 절반에 못미치는 수준이다.
예보 한도가 높아질 경우 금융소비자 입장에선 장단점이 있다. 먼저 예금자로서는 보호받는 예금액이 늘어 보다 안심하고 큰 돈을 금융회사에 맡길 수 있게 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금상품을 주로 재테크 수단으로 이용하는 고객들은 5000만원 한도의 통장을 여러 은행에 분산해서 예치하는 경향이 있다”며 “더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영하는 고객들은 전액을 보호하는 우체국에 맡기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금보호 한도가 상향된다면 금융소비자들이 더 나은 조건의 금리를 주는 예금 상품에 더 많은 금액을 안심하고 예치할 수 있게 된다”며 “금융사들도 예금 유입을 위한 경쟁을 활성화 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다만 예금 보호 한도가 크게 늘어나면 금융회사들이 지불해야 하는 예금보험료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예금보험료(예보료)는 금융사들이 고객 예금을 보호하기 위해 매년 납부하는 보험료인데 예보 한도가 상향되면 그만큼 예보료도 같이 올라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예보료를 시중은행보다 5배 넘게 부담하고 있는 저축은행 업권과 2금융권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다. 현재 예보료율 상한은 0.5%지만 업권별로 한도를 달리 정하는 시행령에 따라, 은행 0.08%, 증권·보험 0.15%, 저축은행은 0.4%가 적용되고 있다. 시중은행 대비 증권·보험사는 2배, 저축은행은 5배 높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은행보다 5배 높은 예보료율을 적용하고 있다 보니 예금 금리 경쟁에서 불리한 측면이 있는 만큼 예보 한도 상향을 위해선 예보료 부담 완화가 함께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예금보험공사는 ‘예금보험제도 개선 검토 관련 연구용역’ 입찰공고를 내고 내달부터 관련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입장이다.
김태현 예보 사장은 “경제규모 확대와 금융환경 변화 등에 맞춰 보다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는 인식에 공감하며, 금융위와 함께 외부 연구용역, 민관합동 TF 논의 등 충분한 검토를 거쳐 내년 8월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