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연다는 총무님 연락 받고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오늘 눈 뜨자마자 세수만 하고 달려왔어. 경로당 오니까 얼마나 좋아. 이제 좀 사람 사는 것 같아. 좋아 죽겠어.”
25일 서울 동작구의 한 경로당에서 만난 이순자(91)씨가 환히 웃어 보였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인해 지난 2월14일 방역 빗장을 건지 두 달여만에 경로당이 다시 문을 연 덕분이다.
이씨는 모처럼 경로당이 활기가 돌고 있다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 전으로 돌아간 느낌도 난다”고 밝혔다. 경로당 곳곳에는 초록색 담요 위로 화투판이 벌어졌다. 광을 팔고 구경을 하던 박경남(86)씨는 “노인네들이야 경로당에서 10원 짜리 화투 치고 커피 마시는 게 낙”이라며 “진즉 열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집에만 머물던 어르신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기 바빴다. 오랜만에 경로당을 찾았다고 밝힌 임경순(83)씨는 “여기 형님은 거의 2년 만에 보는 거 같다”며 “그동안 코로나19 때문에 아들이랑 며느리가 하도 걱정을 하길래 못 나왔다”고 털어놨다.
동작구의 다른 경로당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집에 가만히 있다가 나오니까 서로 얼굴도 보고 너무 좋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경로당 문이 열리는 9시부터 발길을 서둘렀다고 밝힌 김영애(81)씨는 “이전엔 복지관에서 빵이나 떡을 가져오곤 했었다. 1년에 두 번 정도 노인들 콧바람도 쐬주곤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2~3년 간 멀리 못 나갔다”며 “어버이날에는 복지관에서 점심식사를 대접한다고 했다.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고 했다.
이정자(82)씨는 “경로당 폐쇄기간 동안 운동시설을 이용 못해 다리가 굳은 것 같다”며 “이제는 운동도 하고 화투도 칠 수 있어 좋다. 그림 가르치는 선생도 온다고 해서 기쁘다”며 웃었다.
경로당 개방으로 우울증을 겪는 고령층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어르신들이 늘어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1~7월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60대 이상은 전국에서 96만9167명으로, 2020년 같은 기간(91만6612명)보다 5.7% 증가했다.
실제로 어르신들은 경로당 폐쇄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김일례(92)씨는 “우울증에 걸려서 약까지 먹었다. 그동안은 경로당에 한 번씩 왔다갔다하며 바람도 쐬고 산책도 했는데 집에만 있으니 너무 답답하고 살기 싫었다”면서 “이젠 경로당도 나오고 동네 산책도 하면서 나아지려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분홍(82)씨도 “경로당 폐쇄 기간 동안 말도 못할 만큼 힘들었다. 밖으로 안 나가니까 진짜 우울증 걸리겠다 싶었다. 집에서 하루 종일 혼자 있었다. 늙으니까 아무것도 하기 싫다. 누워서 TV만 보다가 어두워지면 잠을 자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젠 경로당이 문을 열었으니 생활 패턴이 바뀔 것”이라며 웃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로 어르신들의 일상도 점차 회복될 전망이다. 25일 경로당 등 여가복지시설 운영 재개를 시작으로, 30일에는 요양시설 대면‧접촉면회도 내달 20일까지 한시적으로 허용된다.
각 지자체에서는 코로나19 고위험군인 고령층의 감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역에 힘을 쏟고 있다. 동작구는 경로당 내 방역책임자를 지정·운영하고, 손 소독제와 체온측정기 등 방역 물품을 비치해 주기적인 방역·소독을 실시할 계획이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