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파라마운트가 운영하는 OTT 파라마운트+에서 ‘헤일로’ 드라마 시리즈가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이 드라마는 번지 스튜디오의 프랜차이즈 게임 헤일로를 기반으로 제작된 것인데요. 세계적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헤일로는 엑스박스 진영을 대표하는 게임으로 밀리터리 SF와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2001년 ‘헤일로: 전쟁의 서막’을 시작으로 지난해 ‘헤일로 인티니트’까지 20년 동안 5개의 정식 시리즈가 발매되기도 했죠. 한국 게이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북미권에서의 인기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높습니다. 특히 주인공 ‘마스터 치프’는 ‘하프라이프’의 ‘고든 프리맨’, ‘데드 스페이스’의 ‘아이작 클라크’와 함께 우주를 수호하는 3대 주인공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드라마 헤일로는 원작 게임만큼의 인기를 누리고 있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모든 에피소드가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24일 기준 메타크리틱 전문가 점수 61점, 네티즌 점수 5.6점(10점 만점)을 기록 중인데요. 로튼토마토 역시 상황은 비슷합니다. 신선도는 69점, 관객점수는 55점으로 높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수치입니다.
긍정적인 평가로는 “액션 시퀀스가 역동적”, “신규 팬들이 관심을 가질 부분이 있음”, “시각적으로 나쁘지 않은 비주얼” 등이 있었습니다.
반면 원작 게임을 즐겼던 이들은 대부분 반감을 드러냈는데요. 특히 드라마에서 마스터 치프가 초반부터 자신의 헬멧을 벗으면서 논란이 커졌습니다. 헤일로 출시 이후 20년 동안 마스터 치프는 게임 내에서 단 한 번도 맨 얼굴을 공개한 적이 없습니다. 2012년 헤일로4 에필로그 챕터에서 찰나의 시간 눈가가 공개된 것이 전부죠. 원작을 즐겼던 팬들은 “게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비판을 남겼습니다.
드라마의 각본을 쓴 스티븐 케인의 인터뷰는 여기에 더욱 불을 지폈습니다. 케인은 지난달 16일 미국의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게임이라는 요소에 구애되는 걸 피하고자 게임에 대해 보지도, 게임에 대해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냥 캐릭터와 세계에 대한 얘기만 나눴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게임 원작 지식재산권(IP) 기반 영상물은 과거부터 꾸준히 제작돼왔습니다. 1982년 미국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에서 ‘팩맨 시리즈’를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한 것이 최초의 사례입니다. 다만 당시 게임들은 이렇다 할 스토리 라인 없이 단순히 캐릭터만을 사용했기에 지금의 형태와는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형태로 넘어온다면 세계 최초의 게임 원작 영화는 1993년 개봉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의 부족한 기술력으로 게임 내 설정들을 현실성 있게 반영하려고 노력했지만, 원작과는 다른 설정으로 흥행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게 됐습니다. 현재까지도 이 영화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손꼽히는 괴작으로 통합니다.
소설이나 만화 기반 영상물과는 달리,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상물들은 대부분 흥행에 실패한다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를 제외하면 ‘툼레이더’, ‘레지던트 이블’ 등의 작품은 어느 정도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습니다만, 이를 제외하면 게임 원작 영상물 가운데 흥행작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게임 원작 영상물이 실패하는 원인에는 대략 세 가지를 뽑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영상 제작자가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게임은 영화에 비해 대중성은 떨어지지만, 마니아 층은 더 탄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원작 게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 영상물이 제작된다면, 이는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2021년까지 총 7편의 영화가 출시된 레지던트 이블의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영화는 캡콤의 대표 호러게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를 기반으로 제작됐습니다. 2002년 개봉한 ‘레지던트 이블’은 일정 부분 게이머와 영화 팬 모두를 만족시켰지만, 이후에는 관객들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듣게 된 비운의 영화입니다. 영화는 게임에서 등장하는 몇몇 설정을 제외하고는 원작과 다른 독자노선을 구축했는데,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두 번째는 게임과 영화 간의 괴리감이 생각 이상으로 크다는 점입니다. 게임 내에서 정말로 멋진 명장면을 영화로 옮기면 굉장히 어색해지는 사례가 많이 있는데요. 여기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게이머는 주인공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게임 내 세상을 체험하면서 직접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죠. 반면 대부분의 영상물은 보통 카메라가 보여주는 3인칭 시점을 통해 스토리를 전개합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게임과는 스토리텔링 방식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 내의 방대한 세계관과 설정을 단시간에 담아내기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2016년에 출시된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어쌔신 크리드’도 이러한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했습니다. 두 게임은 세계관이 방대하고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기로 유명한 작품인데요. 한정된 러닝타임으로 담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아직은 실패 사례가 더 많지만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상물은 계속해서 꾸준히 출시되고 있습니다. 이전에 비해서는 흥행 성적도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미디어 환경이 달라지면서 이전과 같이 스크린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넷플릭스, HBO, 파라마운트+ 등 OTT 플랫폼을 통해 영상물이 공개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앞서 언급한 헤일로, ‘위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죠. 실사영화는 아니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의 ‘룬테라’ 세계관을 담은 ‘아케인’은 잠시나마 넷플릭스 전세계 시청자 1위를 차지하며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게임 기반 원작 영상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묘한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고 보는데요. 원작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영상물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케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주요 등장인물인 ‘바이’, ‘징크스’, ‘제이스’, ‘케이틀린’ 등은 게임 속에서 직접 플레이할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여기에 ‘실코’와 ‘벤더’, ‘멜’ 등 새로운 등장인물을 추가시켜 원작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아케인만의 독자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아케인을 안 보신 분들은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한 명의 게이머로서 게임 원작 기반의 영상물이 꾸준히 제작되는 것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이전과 달리 작품의 퀄리티도 높아진 만큼 게임과 영상 양면으로 성공한 흥행작이 탄생하길 바랍니다.
강한결 기자 sh04kh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