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웃나라 일본의 이야기입니다. ‘엔저’ 현상이 말 그대로 바닥을 ‘뚫어’ 버렸기 때문이죠. 3일 기준 외환시장을 보면 엔화는 1달러에 130엔, 100엔당 975원에 거래가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1달러에 100엔 선을 유지했던 것을 감안하면 반년 사이에 큰 폭으로 엔화가 떨어졌죠.
사실 엔화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한 것은 일본 정부의 ‘의도’였습니다. 뉴스를 보다 보면 들을 수 있던 ‘아베노믹스’가 엔화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것에서 시작됐기 때문이죠. 아베 정권 이후 스가, 기시다 내각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부의 거시금융정책은 일관적이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양적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해 경기를 살리고, 엔화의 가치를 낮추는 일이죠.
이렇게 될 경우 세계 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올라가면서 수출이 늘어나고, 기업들은 임금을 올리며 물가가 상승하는 ‘선순환’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다릅니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글로벌 악재로 전 세계 소비시장 자체가 침체됐고, 회복기를 그리는 2022년이라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온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죠.
결정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선순환의 고리’가 깨졌습니다.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기업들이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드는 비용이 높아지고 소비자 물가도 덩달아 올라갔죠. 이 와중 기업들이 수출을 통해 이익을 확대하려고 해도 엔저가 심화되면서 이익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엔저 현상을 조절할 필요가 있겠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수 차례에 걸쳐 올리겠다고 공언하면서 달러의 가치가 상승, 외환투자자들이 달러를 사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러의 가격은 오르는데 엔화는 계속해서 내려가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금융 전문가들이 지금의 상황을 ‘나쁜 엔저’라고 우려하고 있죠.
어찌됐건 이런 ‘나쁜 엔저’ 현상이 한국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수출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의 전공과목이 달라졌기 때문이죠. 이전에는 한국과 일본의 수출 물품이 비슷해 엔저가 한국에 악재였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뜻이죠. 이를 나타내는 것이 한일 수출경합도(수출품목이 겹치는 정도)가 있는데요, 2016년 0.487(1을 기준으로)로 고점을 찍은 후 2017년 0.463으로 크게 떨어지고 2020년 기준 0.471을 기록한 상황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소비자들에게 미칠 영향도 제한적입니다만, 몇몇 변화는 있을 예정입니다. 대표적으로 일본 여행을 갈 때 좀 더 이득이 되겠죠. 엔화가 강할때보다 엔화가 약할 때 좀 더 저렴한 여행이 가능할테니까요. 또한 일본서 상품을 ‘직구’ 할때도 좀 더 싸게 들여올 수 있겠죠.
이와 함께 한국서 엔화가 낮을 때 ‘매수’하자는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엔화 예금 잔액은 6046억엔으로 전월대비 203억엔 증가했습니다. 투자 목적이든, 여행 목적이든 지금 사놓으면 이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매수로 이어졌다는 분석입니다. 다만 엔저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만큼 투자 목적으로 엔화를 장기간 보관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