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대출만기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원래부터 길었던 주택담보대출의 만기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단기 상품으로 취급되던 개인신용대출의 만기도 늘어나고 있지요. 그간 한국에선 거의 보기 힘든 상황으로, 이웃나라 일본에서나 볼 수 있던 광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이 만기가 최장 40년인 주담대 상품을 출시하기로 했습니다. 당초 우리은행의 주담대 만기는 35년으로 5년이 늘어나게 된 셈입니다.
우리은행이 주담대 만기를 연장하면서 5대 시중은행들 모두 주담대 만기 연장행렬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가장 먼저 주담대 만기를 늘린 곳은 하나은행인데요, 지난달 21일 5대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주담대 상품의 최장 만기를 35년에서 40년으로 늘렸습니다. 이후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 국민은행도 각각 6일과 9일, 13일 주택담보대출 만기를 40년까지 늘렸죠.
개인신용대출의 만기도 늘어났습니다. 농협은행은 오는 20일부터 분할상환방식 신용대출의 대출 기간(만기)을 최장 5년에서 10년으로 늘린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국민은행은 지난달 29일부터, 신한은행은 13일부터 신용대출 만기를 최장 10년까지 늘린다고 밝힌 바 있죠.
심지어 지난 10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50년짜리 주담대 상품 출시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50년짜리 주담대 상품은 이미 지난 2019년 이웃나라인 일본에서 출시한 바 있는데요, 30세에 취직해 60세에 정년퇴직하더라도 20년동안 대출을 상환해야 하는 것이죠.
이처럼 금융권 뿐 아니라 정부에서 직접 나서서 대출만기를 늘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은행들은 “고객의 선택권을 위해 대출만기를 늘리게 됐다”고 말하지만,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결국은 ‘영업’에 목적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보면 대출 만기가 길수록 같은 금액을 빌렸을 때 매달 갚아야 하는 원리금은 적어집니다. 일반적으로 주담대는 전액을 기간에 맞춰 상환하기 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대출 상품을 갈아타거나 중도상환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은행 입장에서는 만기까지 갈 일이 별로 없는 주담대 만기를 연장하는 것이 좋은 선택지는 아니죠. 하지만 현재의 금융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이같은 선택을 한 것입니다.
먼저 만기가 늘어나면 ‘DSR 규제에도 빌릴 수 있는 총 대출액’이 늘어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현재 부동산 규제의 핵심은 주담대 등 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의 40%를 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대출이 있고 연소득이 낮다면 ‘DSR 40% 규제’에 막혀 추가대출이 불가능해 은행 입장에선 대출 영업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만기가 늘어나면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줄면서 대출 한도가 늘어나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미 주담대가 있는 금융소비자들의 입장에선 만기가 늘어난 상품으로 갈아타면 더 낮은 원리금과 더 많은 추가 대출금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겨나죠. 이를 통해 기존 주담대 이용 고객들을 끌어모으려는 전략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소득이 적은 청년층들에게 ‘일단’ 더 낮은 부담을 주며 자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현재 주택금융공사가 준비하고 있는 40년 초과 주담대 상품은 DSR 규제를 피해 대출 가능 금액을 늘릴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부담해야 하는 이자가 늘어나는 것은 여전하기 때문에 대출 수요자 입장에선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6억원을 30년 만기(연 4%)로 빌리면 총납입 이자액은 4억원이지만 40년으로 늘어나면 6억원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사실상 원금 전체를 이자로 내는 것과 다를게 없죠.
또한 지금이 금리 상승기라는 상황이 이자 부담을 더 무겁게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주담대 상품들은 고정금리보다 비교적 이자부담이 덜 한 변동금리 상품인데요, 기준금리가 연내 추가 인상이 예정된 만큼 길어진 만기로 인해 차주들이 부담해야 할 이자도 덩달아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찌됐건 금융권의 대출만기 연장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단점이 명확한 만큼 현재 자신의 경제 상황을 보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