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최근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서 한 말입니다. 연방준비제도(Fed)가 현재 검토 중인 디지털화폐(CBDC)를 중앙은행에서 발행한다면 민간 가상화폐와 스테이블 코인은 거의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연준도 뜻을 같이했습니다. 재닛 옐런 장관도 지난 9일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CBDC가 스테이블 코인의 금융 리스크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습니다.
CBDC가 코인의 대안으로 주목받은 건 루나-테라 사태 때문입니다. 업계는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UST)가 붕괴하면서 세계 중앙은행들이 CBDC 발행을 서두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가상화폐 산업의 안정성을 위해 디지털 통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중앙은행이 받는다는 것이죠.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종이 화폐를 디지털화한 것을 말합니다. 디지털로 거래된다는 점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와 비슷하지만,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고 관리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기존 법정통화와 1대 1로 교환할 수 있어 스테이블 코인과 유사하지만, 중앙은행에서 직접 발행하기 때문에 안정성이 훨씬 큽니다.
CBDC를 발행하면 화폐 발행·폐기 비용이 절감되고 거래의 신속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출처를 알 수 있으므로 불법 거래 추적이 쉬워집니다. 모든 거래정보가 중앙은행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개인의 사생활 침해나 빅브라더(사회 통제 권력)로 변질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현재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제로페이 등 각종 페이들이 있습니다. 지문 등 아주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환경에서 왜 CBDC가 필요한 지 의구심을 갖는 분들 계실 겁니다.
CBDC가 필요한 이유로 현금 소멸 현상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15년 비현금 결제율이 90%에 육박했죠. 현금의 시장가치가 하락한 국가일수록 더 높은 비현금 결제율이 높았습니다.
기술 발전에서 소외되거나 금융 접근성이 떨어지는 금융소외 계층의 문제가 대두됐죠. 또한 신용카드, 간편결제시스템은 신용이 필요합니다. 카드나 계좌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절차와 그에 맞는 신용도 평가해야 하죠.
각국은 현금이 사라지는 현상을 막고 공공성을 보호하기 위해 CBDC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일본 중앙은행은 지역에 따른 현금 접근성 편차를 줄이기 위해 현금과 함께 범용 CBDC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두 번째로 국내외 화폐 주권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고유의 발권력을 의미합니다. 스테이블 코인의 등장은 중앙은행에서 발권할 수 있는 발권력을 위협하고 있죠. 스테이블 코인 중 ‘테더(USDT)’는 미국 달러와 1:1로 연동됩니다. 자금 이동 규제를 피할 수 있어 달러의 대체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도 스테이블 코인 형태의 ‘리브라(Libra)’ 코인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화폐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세계 각국 정부는 통화가치 정책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했습니다.
스웨덴은 2017년 중앙은행에 CBDC를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하고 CBDC인 ‘e-크로나’를 개발했습니다. 지난 2월까지 시범 운영했고 내년 중으로 도입할 예정입니다. 유럽중앙은행(ECB) 또한 유로존 회원국 19개국이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유로’ 발행 프로젝트를 공식화했습니다.
중국은 2019년 12월 CBDC 발행을 공식 선언하고 지난해 4월 저장성 쑤저우에서 중국 인민은행이 발행한 CBDC인 ‘DCEP’를 공무원들에게 교통비 지급 형태로 시범 사용했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2000만 위안을 민간인 10만명에게 시범 발행해 1만여 상점에서 사용하는 등 상용화 시험에도 적극적입니다. 중국은 2022년 DCEP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다음 달 말까지 CBDC 모의실험 연구를 통해 적용 가능성을 점검할 계획입니다.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진행한 1단계 모의실험에서는 CBDC의 제조와 발행, 유통, 환수와 같은 기본 기능을 구연했습니다. 올 1월부터 2단계 실험을 통해 통신이 단절된 상황에서의 오프라인 결제, 디지털자산 거래, 국가 간 송금 등의 확장기능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