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경남 양산 문재인 전 대통령 자택 주변의 보수단체 ‘욕설 시위’에 관해 “대통령 집무실 시위도 허가되는 판이니까 법에 따라서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공적 공간인 대통령실 앞 집회와 사적 공간인 퇴임 대통령 자택 앞 집회를 동일 선상에 놓고 “법대로”를 강조한 것이다.
일부 극우 단체들은 문 전 대통령이 양산 평산마을에 정착한 지난달 10일부터 확성기 등을 이용해 ‘욕설 시위’를 벌이고 있다. 문 전 대통령 쪽이 이들을 모욕 및 허위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보수단체 시위는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폭력적이고 비인도적인 테러이며, 이를 용인하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옹졸함의 극치”라며 “시위를 부추기고, 이를 제지해야 할 경찰에도 좋지 않은 신호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윤 대통령은) 문 전 대통령 사저 앞 욕설 시위로 인한 피해를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는 인식을 드러냈다. 사실상 폭력적인 욕설시위를 방치하고 더 나아가 부추기겠다는 입장 표명에 더 가깝다”며 “현 대통령을 향한 시위가 전 대통령에 대한 시위와 같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대통령의 업무 중 하나는 분명히 국민들의 욕설이나 비판도 잘 듣는 것이나 전직 대통령과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일반 주민이 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과 살인, 방화 협박, 고성에 의한 모욕 등을 당해야 하나”라면서 “전직 대통령의 예우에 관해 이미 법률로 규정되어 있는 만큼 충분히 예우를 해도 모자랄 판에 사저 주변 주민들의 피해도 ‘나 몰라라’ 하겠다는 그 태도는 심각한 상황인식의 오류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유는 승자독식이 아니다’라는 윤 대통령의 취임사를 인용하며 “우리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방치하고 법을 빙자해 진영논리와 편 가르기식 인식을 드러낸 윤 대통령의 졸렬한 태도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의 문 전 대통령 사저 입장 기사를 게시한 뒤 “흠…”이라며 짧은 글을 올렸다.
진 전 교수는 지난 1일 페이스북에서는 “문 전 대통령 사저까지 찾아가 육갑을 떠는 인간들도 쓰레기이지만, 그걸 잘하는 짓이라고 거드는 인간들이 더 저질”이라며 “더 악질은 그거 보고 말리기는커녕 ‘너도 양념 좀 당해 보라’며 방조하는 인간들이다. 5년 후에 윤석열도 똑같이 당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가 언급한 ‘양념’은 문 전 대통령이 201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강성 지지층의 비난 문자 행동’에 대해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민주주의의 양념 같은 것”이라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금태섭 전 의원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법으로 시위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자제를 호소드린다. 마을 주민들도 피해를 호소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전직 대통령 사저 앞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의 과격한 시위를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통합으로 나아가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불편을 겪고 계신 문 대통령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는 정도의 답을 했으면 어땠을까”라고 의견을 밝혔다.
금 전 의원은 이어 “대통령은 법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고 정치를 하는 자리”라며 “연속으로 법률가 출신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정치가 실종되어 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한편 문 전 대통령은 퇴임일부터 한 달 가까이 보수단체가 자택 앞에서 욕설과 고성으로 점철된 시위를 이어가자 일부 회원을 고소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윤건영·한병도·민형배 의원은 최근 양산경찰서를 찾아가 미온적 대응에 항의하기도 했다.
이준석 대표, 윤상현 의원 등 국민의힘 관계자들도 “온건하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문 전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전달했으면 좋겠다”, “정치적 표현이 민폐가 되어선 안 된다”며 자제를 요청했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