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7월2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만난 가수 미루(meeruu). 언제부터 음악을 듣기 시작했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하며 모태 알앤비 가수로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미루는 지난해 10월 싱글 앨범 ‘온 어 선데이’(ON A SUNDAY)를 통해 힙합계에 모습을 드러낸 신예 R&B 가수다. Mnet ‘쇼미더머니’ 시즌 6, 7에 출연한 래퍼 로스(LOS)의 정규 1집에 참여해 주목받았다.
지난달 12일, 미루는 첫 EP 앨범 ‘시그널’(Signal)을 발매했다. 어두웠던 과거를 담담히 풀어내는 아티스트의 자전적 서사가 돋보인다는 평이다. 여기에 래퍼 이케이(EK)의 ‘갓 갓 갓’(GOD GOD GOD) 작곡 및 편곡을 맡은 영 배스(YOUNG VA$$), ‘브레이크 브레드’(BREAK BREAD) 프로듀서 유지피(UGP) 등이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미루의 음악을 만든 건 8할이 가족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엄마, 기타를 잘 치는 아빠, 가수로 활동했던 할아버지, 키우던 강아지까지. 가족이 지금의 미루를 있게 했다. “제 음악은 가족 영향이 커요. 우선 제 예명 미루는 본가에서 키우던 강아지의 이름에서 따왔어요. 안타깝게도 2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애착이 많았던 아이라 예명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가수로 활동하셨고, 아빠는 기타를 잘 쳐요. 외가 쪽에는 아이돌로 활동하는 사촌이 있죠. 특히 알앤비 음악을 시작하게 된 건 엄마의 영향이 커요. 엄마가 저를 가졌을 때부터 팝, 록, 알앤비 등을 태교 음악으로 들었대요. 날 때부터 저는 음악, 특히 알앤비에 둘러싸여 있었던 거죠”

그런 이유에선지 미루 앨범에는 가족 이야기가 많다. “첫 트랙은 ‘가방’이라는 곡이에요. ‘그녀의 가방 안에는 어떤 물건들이 있을까’라는 가사로 시작해요. 엄마 얘기예요.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크게 싸우고 엄마가 짐을 싸서 집을 떠났어요. 물건들이 널브러진 방에 나를 두고 가방을 챙겨 떠나는 엄마를 보며 어린 마음에 ‘왜 나는 데리고 가지 않을까. 저 가방 속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라는 생각했어요. 돌이켜보면 제 인생에 처음 마주한 힘든 순간이었어요”
“마지막 곡 ‘어젯밤에’는 후회와 미안함에 대한 이야기예요. 어린 시절 아빠가 강아지를 바구니에 담아 엄마에게 선물하듯 건넨 기억이 있었어요. 이 장면이 동요 ‘아빠와 크레파스’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도입부에 같은 멜로디를 차용했죠. 사실 엄마는 아빠가 데리고 온 강아지를 미워했어요. 그땐 왜 저럴까 싶었죠. 어리니까 부모님이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지만, 저 역시도 부모님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관심이 없었어요. 엄마가 힘들어하고 울 때, ‘나는 몰라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때의 무심함을 후회한다는 내용이에요”

미루의 목표는 친근하고 편한 아티스트다. 자기 모습 그대로 대중과 소통하겠다는 얘기다. “사람 냄새가 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과하게 꾸며 다른 사람인 척하는 걸 싫어하거든요. 지금보다 유명해져도 길거리에서 하이파이브하고, 사진 찍으며 대중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초면에 술 마시러 갈 수도 있고요. 제 음악을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들으면 좋겠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듣는 음악을 추구한다고, 그의 열정까지 가벼운 건 아니다. 미루는 새로운 사운드를 위해 알앤비, 웨스트 코스트, 랩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있다. “8월 중순에 제가 속한 레이블 아트 체인 스토어에서 컴필레이션 앨범이 나오는데요. 저도 참여했어요. 아트 체인 스토어는 영 배스, 도베르만 등 앨범 작업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 속해 있는 크루예요. 제 앨범 시그널은 조금 우울한 색깔이지만, 이번에 나오는 컴필레이션은 통통 튀고, 끈적이고, 신나는 웨스트 코스트 사운드가 들어가 있어요. 다음 앨범 역시 이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알앤비 외에도 랩 요소를 많이 넣어서 새로움을 주는 음악을 만들 계획입니다”
조수근 쿠키청년기자 sidekickroo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