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만에 기록적인 폭우를 계기로 증권사 전산관리시스템에 대한 총체적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밤 폭우로 국내 대형증권사 가운데 한곳에서 전산 장애로 장시간 주식거래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관련업계에서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주요 증권사에선 본사와 다른 장소에 전산백업시스템을 두고 있어서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NH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하나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국내 대형 증권사들은 별도의 전산 및 백업센터를 두고 있다. 폭우와 낙뢰와 같은 자연재해나 정전 등으로 인해 서버가 멈추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또한 재해 발생 시 복구시스템이 가동돼 거래에 지장이 없도록 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주 전산센터인 서울 상암에 두고 있다. 또한 여의도와 경기도 의왕 등에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이용하고 있다. 삼성증권도 여의도를 포함해 각기 다른 3곳에서 데이터를 분산 관리하고 있다. KB증권은 김포에 KB금융그룹통합IT 센터와 여의도에 재해복구센터(DRC)를 두고 투자자에게 주식거래 안정성을 제공한다. 이와 함께 김포 IDC를 포함해 총 3곳의 IDC를 나눠서 운영 중이다.
집중호우가 내린 서울 강남에 본사를 두고 있는 삼성증권은 여의도 KT IDC에서 주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수도권 3곳에 추가로 백업시스템을 분산해 뒀다. 전산사고를 일으킨 한국투자증권 또한 별도의 백업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기록적 폭우엔 백업시스템도 먹통?
다만 이같은 백업시스템이 거래 안정성을 유지할 지는 미지수다. 한국투자증권 사태에서도 보듯이 자연재해가 닥치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어서다.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 사옥은 지난 8일 오전 10시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시간당 100mm에 달하는 폭우에 일부 침수됐다. 6층 정원에서 시작된 누수가 4, 5층을 삼켰다. 지하 3층의 전산 기계실에서도 합선이 발생했다. 동시에 중앙감시실의 전력 공급이 마비되며 오후 4시부터 15시간 동안 주식거래 서비스가 중단됐다. 다음날인 9일 오전 7시 15분에서야 거래시스템이 복구됐다. 이로써 전날 접속이 불가능하던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공식 홈페이지 등은 접속이 하루가 지나서야 가능해졌다.
한투증권은 사태와 관련해 “합선이 발생한 지하 3층에는 누수가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합선 원인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감전 사고 등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이 열리기 전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에 집중했다. 백업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는 확인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누수로 합선이 발생해 시스템 전체에 전력공급이 중단됐다는 추측이 제기됐다. 또한 재해복구시스템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재해 발생 시 백업시스템이 가동돼 거래에 지장이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IDC(인터넷데이터센터)는 정전 등으로 인해 서버가 멈추면 안되기 때문에 절대 정전되지 않도록 설계했다”면서 “만의 하나, 정전 사태에도 대비하기 위해 IDC는 전력공급 업체로부터 우선적으로 전력을 공급받고 있다. 전산망이 전력 공급 중단으로 멈추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산시스템 점검 등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최근 거래량이 늘면서 수수료이익이 늘었는데 IT 등 전산시스템에 대한 투자는 미비하다보니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면서 “리스크 관리가 전혀 안되고 있는 것이다. 고성능 시스템을 갖추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산오류로 인한 보상도 증권사 규정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금융당국에서 방침을 만들어 이에 따라 보상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투증권은 접속 불량으로 피해를 본 고객을 대상으로 관련 사내 규정에 따라 보상 여부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투자자가 투자 손실 피해액 전부를 보상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거래 중단으로 인한 손실피해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