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어떡해”…폭우는 또 ‘주거 약자’를 먼저 삼켰다

“아이고, 어떡해”…폭우는 또 ‘주거 약자’를 먼저 삼켰다

골목마다 반지하 주택 침수로 망가진 살림살이 쏟아져 나와
전문가 “대심도 터널이 해법? 기존 배수시설부터 확인해야”

기사승인 2022-08-10 17:00:48
지난 8일부터 이어진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주택. 사진=임지혜 기자

기록적 폭우로 서울 지역에서만 5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중 4명은 반지하에서 거주하던 주거 약자였다. 집중호우 때마다 반지하 거주자들의 참사가 반복되지만 주거 약자를 보호할 대책은 마땅히 없는 상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0일 쿠키뉴스가 찾은 경기도 안양시 안양천 인근 주택 지역은 지난 폭우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골목마다 반지하 공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집안 살림과 장판, 매트, 옷가지 등이 쌓여있었다. 곰팡이 냄새처럼 퀴퀴한 냄새와 악취로 뒤덮여 사용이 어려워 보였다.    

길거리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골목마다 쌓인 젖은 물건들을 보며 “아이고, 이를 어쩌나. 어떡하냐”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반지하 주택에 거주한다는 주민 A씨는 젖은 옷과 생활용품을 햇볕에 말리면서 “비 때문에 이렇게 됐다”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8일부터 서울 등 수도권에 내린 비는 일부 지역에서 500mm를 넘기며 인명 인명과 재산 피해를 발생했다. 특히 A씨와 같이 반지하에 거주하던 이들의 피해가 컸다. 

8일에는 서울 신림동 한 주택 반지하에서 갑작스럽게 들어찬 물에 발달장애 일가족 3명이 숨졌고, 같은 날 동작구 상도동에서도 반지하에 거주하던 50대 기초생활수급자 1명이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국토교통부가 2021년 5월 발표한 ‘2020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지하·반지하·옥탑방 거주 가구 비율은 1.6%이다. 전국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지만 수도권에 밀집돼 있다. 2020년 4월 국토연구원이 발행한 국토이슈리포트 제15호에 따르면 2015년 지하에 거주하는 36만여가구 중 95.8%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었다. 

유독 반지하 가구 등이 수도권에 몰린 이유는 높은 집값 때문이다. 비싼 전·월세 비용을 감안하기 부담스러워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반지하 등을 거주 공간으로 고른 주거 취약에게 늘 여름철 폭우는 가혹한 대상이었다. 서울시가 지난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인해 반지하 상당수가 침수 피해를 입자 저지대 주거용 반지하 신축을 금지했으나 2020년 말 기준 서울 시내에만 20만849가구가 반지하에 살고 있다. 

안양천 인근 침수 주택에 지원을 나온 119. 사진=임지혜 기자

전문가들은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민 생명 보호를 우선에 두고 방재·복지 시스템을 보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인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보는 지난 2020년 3월 ‘(반)지하 주거 현황과 시사점’ 자료를 통해 “채광, 환기, 습기 등 생활환경이 열악한 반지하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주택 개보수 및 개량 등 물리적 지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주거취약계층이 반지하 주거를 선택하는 이유가 저렴한 임대료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해 공공임대주택 공급, 저리의 전월세 자금 지원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조성일 대도시방재안전연구소장(전 서울시시설공단이사장)은 쿠키뉴스를 통해 “반지하라는 공간이 주택 문제로 부득이하게 생겨났지만 사실 도시를 개발할 때 (안전면에서) 가능하면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며 이번 반지하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를 안타까워했다. 

그는 “우리보다 강우량이 많은 일본 도쿄는 시간당 75mm를 견디는 게 목표이다. 서울시는 95mm 폭우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일본보다 기준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방재시설을 짓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일본도 기준을 상향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일본은 지하 침수는 일부 감안하더라도 ‘침상 침수는 되지 않겠다’는 데 목표를 둔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거주용 반지하 주택이 거의 없어 가능한 일이다. 수도권에 반지하 주택이 많은 우리나라의 경우 강수 처리용량을 늘리는 것에 앞서 구체적인 대비책을 계획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조 소장은 “기후변화로 인해 비가 자주 많이 내리고 빈도도 잦아 질 것인데 그때마다 하드웨어를 늘리는 데에만 투자를 할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며 “하수도 관거 용량 확대, 핏물펌프장, 방재용 대심도 터널 등 하드웨어에만 너무 많은 투자를 하다보면 (예산이 쓰여야 할 다른 부분이 소홀해져) 또 다른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만들어 놓은 하드웨어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도록 제대로 관리를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폭우 속에 시민이 빗물받이의 쓰레기를 치우는 게 아니라 관공서에서 원래 해야 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돌봄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확인이 필요하고, 구급대·관공서 등의 일손이 부족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공공·민간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도 고민해봐야 한다. 또 하수관 내부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피고 맨홀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안전망을 설치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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