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만료는 아직 1년이 넘게 남았는데 부모님이 정말 무리해서 내어주신 2억원이라는 큰 돈을 저 하나 때문에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관악구에 거주 중인 A씨는 최근 ‘보증금 먹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본인이 거주 중인 전셋집이 매매가보다 전세가가 더 높은 이른바 ‘깡통전세’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건물에는 22억원 가량의 근저당이 잡혀있었고 선순위 임차보증금도 최소 19억원에 달했다.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 2명이 임차권 등기명령을 통해 주택임차권을 설정하기도 했다.
깡통전세로 밤잠을 설치는 사례는 A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이 80%를 넘어서는 지역이 속출하면서 세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전세보증금 미반환에 따른 피해액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에 청년 세입자연대 민달팽이유니온과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가 10일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보증금 먹튀 국회 토론회’를 열고 보증금 미반환 실태를 짚고 제도 개선 방안 등을 논의했다. 전문가들은 △세입자 정보열람 권한 보장 △보증금 회수절차 강화 △보증금 상한제 등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전국 전체주택 전세가율은 87.8%로 지난해(65.1%)보다 크게 올랐다. 세종을 제외한 전국 16개 시도에서 모두 전세가율이 올랐다. 인천의 경우 매매가에 비해 전세 상승속도가 빨라 전세가율이 100%대를 돌파한 101.4%를 기록했다.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만 보면 4개시도가 100%를 초과했다. 5월 기준 아파트 전세가율은 △충북 111.9% △전북 110.5% △경북 109.8% △충남 108.0% 등에서 100%대를 넘었다.
전세가율이 80% 이상인 단지도 전체의 37%에 달했다. 특히 서울 강서구(69.7%)와 인천 강화군(68.8%), 전남 목포시(83.2%)와 충남 당진시(82.3%) 등에서 높게 나타났다. 최 소장은 “전세가율이 80% 이상인 단지 비율이 이렇게 높은 것은 강통전세 문제가 매우 광범위한 현상으로 현재 정부의 대응처럼 일부 임대인의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전세사기’로 한정해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집주인이 전세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사례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달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사고금액(건수)은 872억원(421건)로 집계됐다. 금액과 건수 모두 역대 최대치인 지난해 12월(742억원, 326건) 통계를 갈아치웠다. 사고액은 2016년 34억원에서 2017년 74억원, 2018년 792억원, 2019년 3442억원, 2020년 4682억원, 지난해 5790억으로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깡통전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먼저 세입자들의 ‘정보격차 해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중개대상물에 관해 세입자가 겪는 정보격차 해서가 필요하다”며 △경매배당순위에 관련도니 임대인의 권리관계 정보 열람 권한 보장 △대항력 효력 발생 시점에 관환 세입자 권리보호 장치 마련 등을 제안했다.
전세가율을 공개하는 시스템 구축 필요성도 거론됐다. 최 소장은 “세입자의 고통이 큰 깡통전세 문제는 예방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법률개정 없이 정부의 의지만으로 시속한 대응이 가능한 세입자의 정보 접근권 확대 등의 조치를 신속하게 시행해야한다”며 “매매가, 전세가, 전세가율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 단지에 대한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보증금 규모가 큰 현재 구조를 벗어나야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수 위원장은 “한국 주택임대차 시장에서 세입자에게 요구하는 보증금 규모는 몹시 비대하다. 월 임대료와 비교해 보증금으로 책정할 수 있는 배수의 상한선을 규정하는 등 임대료 규제방안을 마련해 지나치게 높은 보증금으로 인해 개인이 짊어지게 되는 위험비담을 현저히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소장은 “‘빚내서 세 살아라’라는 정책이 이어지면서 전세 보증금 대출한도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깡통전세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원인”이라며 “세입자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해 주택임대차 보호법 추가 개정을 통한 신규 임대차 계약의 임대료 규제 도입, 1년 한시 사업인 청년 월세 지원 사업 등 주거비 직접지원 확대,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 근본적인 대책 시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현지 기자 hyeonzi@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