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기자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학교에서 뛰어다니다가 호랑이 선생님에게 딱 걸리는 날이면 복도, 계단에 엎드려뻗쳐 엉덩이를 흠씬 두들겨 맞아야 했습니다. 중학생 때에는 귀밑 3cm 규정을 넘으면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려야 했고, 음악 수업에 한 사람이라도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단체로 책상 위에 올라가 허벅지를 맞았던 기억도 납니다. 학교 규칙과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지키지 않은데 대한 ‘교육적 체벌’로 여기고 당연히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훈육을 명분으로 용인됐던 체벌이 금지된 것은 반가운 일이나 학생 체벌 금지가 시행된 지난 2010년을 기점으로 교권 침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최근 알려지는 뉴스들을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입니다. 최근 충남 홍성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수업 중 교단에 드러누워 휴대폰을 만지는 충격적인 영상이 온라인에 공개됐습니다. 학생이 담임 교사의 뒷모습을 촬영하는 듯한 모습이 찍혔는데 교사는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업을 진행했고, 다른 학생들도 이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웃통을 벗고 수업을 듣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교육활동 침해행위 건수는 6128건에 달합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 7월 전국 유‧초‧중‧고 교원 865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교사 10명 중 6명(61%)이 ‘수업 중 학생 문제행동을 매일 겪는다’고 응답했습니다. ‘문제행동 학생으로 인해 여타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응답은 무려 95%에 달했습니다.
교사 대부분 제자에 대한 처벌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3년간 시도교육청이 ‘교원지위법’ 위반 혐의로 학생 또는 학부모를 고발한 경우는 14건에 불과했습니다. 같은 기간 교권침해 건수(6128건)의 0.002% 수준입니다. 오죽하면 교권 침해 특약 보험에 가입하는 교사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교총은 “큰 소리로 (학생을) 타이르거나 꾸짖으면 오히려 정서학대로 민원, 소송의 대상이 된다. 뒤로 나가 서있게 하거나 교실에서 분리하는 것도 인권 침해와 학대로 몰릴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학생의 문제행동에 대해 교사가 지적한들 학부모가 악의를 갖고 항의하면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며 “그러다보니 학교교권보호위원회가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라고 강조했습니다. 학생의 문제 행동에 즉각 제지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지적입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학생 인권과 교사 교육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초등 6학년 자녀를 둔 박효주(40)씨는 “(수업 중 교단에 누운 학생) 담임교사가 학생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뉴스를 들었다. 교사 입장에선 일이 더 커지는 것이 부담스러운 건 아닐까 생각된다”며 “저런 행동을 장난으로 치부해 지나치면 그보다 더 한 잘못된 행동도 하게 될 것. 학생 인권만큼 교사의 인권과 교육권도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다른 학부모들도 “말도 안되는 행동”이라며 혀를 찼습니다. 초등 6학년 자녀를 둔 김가영(42)씨는 “교실에서 한 아이가 문제행동을 하면 교사의 교육권은 물론이고, 다른 아이들의 수업권도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 것 아니냐”라며 적당한 규율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부 학부모 사이에선 문제행동을 한 학생도 문제지만 학교와 가정에서 인성교육이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초등 3학년 자녀를 둔 이은경(38)씨는 “어느 부모가 내 자식이 학교 수업 중에 교단에 드러누워 휴대폰을 할 것이라고 상상하겠나. 정말 충격적”이라며 “주변에서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을 보면 그 부모가 가정 밖에서의 아이 행동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 아이에 대한 더 깊은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맘카페 등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믿고 싶지 않은 뉴스를 봤다. 자녀의 기본 인성교육을 함께 다시 시작하자”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해당 게시글에 학부모들은 “아이들 정말 잘 키워야겠다” “부모부터 아이가 바르게 자라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 등의 댓글을 달며 공감했습니다.
교권 강화를 위한 움직임도 일고 있습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이태규 의원은 지난 18일 수업 방해 학생으로부터 교권과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및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교원지위법)을 대표 발의한 바 있습니다.
또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달 31일 3기 공약을 발표하면서 교권보호조례 제정을 통해 무너진 교권을 회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시가 교권보호조례를 제정하면 17개 시·도교육청 중 경기·경남·광주·인천·울산·전북·충남에 이어 8번째로 교권보호조례를 제정한 교육청이 됩니다.
조 교육감은 “교육활동보호조례(교권보호조례) 초안은 완성한 상태이며 곧 공개할 예정”이라며 “조례수준에서 담을 수 있는 최대치의 교권보호 내용을 담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