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여도 괜찮아 [쿠키청년기자단]

ADHD여도 괜찮아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2-09-09 06:00:02
사진=픽사베이
“인터뷰 앞서 당부드릴 게 있는데요. ADHD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방사형 사고예요. 그러니까 대화 중 갑자기 딴소리한다고 느끼실 수 있어요. 양해 부탁합니다. 참, 요즘 메타인지가 유행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만들어낸 말이 있는데….”

올해로 연애 4년 차에 접어든 대학원생 김진영(29·가명)씨와 최희민(26·여·가명)씨. 이들에게는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 성인이 된 이후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를 진단받은 환자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복지센터는 성인 인구의 2.5%에서 성인 ADHD가 나타난다고 밝혔다. 국내 환자는 80만명으로 추산된다. 건강보험심사원 통계에 따르면 진단받은 성인 ADHD 환자는 2020년 기준 7만9000여명이다. 특히 전체 성인 환자 중 중 20~30대 청년 환자의 비율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ADHD 환자는 주의력이 산만해 비관심 분야에서의 집중 및 수행 능력이 낮고, 계획을 세워 한 가지 과제를 완수해 내기 어렵다. 성취 경험이 적기 때문에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 의욕이 없고 게으르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이들 중 약 75%는 충동장애, 분노장애, 우울증 등 기타 정신질환을 동반한다. 모두 사회 진출을 앞둔 청년에게 치명적인 증상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낙담할 수만은 없다. 청년도 알고 있다. 아픔과 슬픔까지 끌어안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ADHD와의 불편한 동거를 끝내고 공존의 해법을 찾은 김씨와 최씨를 지난 일 7월29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한 원룸에서 만났다.

김진영(이하 김): 안녕하세요. 만난 지 4년 된 커플입니다. 둘 다 4년 전에 ADHD 진단을 받았어요. 지금은 대학원에서 각각 정치외교학과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저희 취미는 다양해요. 자전거 타기, 수영을 좋아하고, 등산에 빠져 클라이밍을 배운 적도 있어요. 물건 수집도 좋아해요. 만년필, 공책, 종이, 빈티지 옷,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용품, 전자기기, 게임기 등을 모으기도 했고요.

최희민(이하 최): 최근에는 옷에 푹 빠져서, 휴학하고 패션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저는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서 디자인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고, 진영이는 옷을 좋아해 원단을 잘 알거든요.

‘다양한 관심사를 갖는 게 젊은 ADHD 환자들의 국룰’이라고 말하며 웃은 최씨. 지금은 그의 특성을 다양화한 취향으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학창 시절에는 그저 산만하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학생으로 치부될 뿐이었다.

김: 어릴 때부터 산만하다, 집중 못 한다, 눈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이것저것 동시에 시작했어요. 한 가지 일을 집중해서 끝내는 게 어려웠고요. 그런 이유로 자꾸 혼나다 보니 자책이 많았어요. 자존감도 낮았죠. 성인이 될 때까지 제가 ADHD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저도 자신을 그저 산만하고, 정신없고, 눈치 느린 사람이라고 여겼던 거죠.

최: 저는 지각을 자주 하는 편이었어요. 대학 기말고사나 대학원 세미나 등 중요한 약속에 늦은 적이 많아요. ADHD는 무엇인가에 적당히 집중하는 게 어렵거든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되뇌지 않으면 약속 시각을 놓치기 쉬워요.

김씨와 최씨 커플은 한 대학 심리상담센터에서 ADHD 의심 소견을 받은 이후에야 병의 존재를 알게 됐다.

김: 진단받았을 때 절망했어요. 내가 정신 질환자이고 2년 이상 각성제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죠.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어요. ADHD 진단을 받으니까 지금까지 질타만 받던 제 인생에 당위성이 생긴 거예요. 지난 세월에 대한 위로와 보상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더라고요. 이제는 더 이상 물건을 잃어버려도 제 탓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병인 줄 모르고 극복하려 노력한 세월이 아깝더라고요.

최: 저는 그동안 제가 우울증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먼저 진단받은 남자친구가 권유해서 병원에 갔고 ADHD라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진단 전까지 ‘나는 왜 이럴까’ 같은 생각을 하며 제 탓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소모적인 자책을 그만두고, 약을 꾸준히 먹으면서 규칙적 생활 습관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ADHD 증상은 오히려 이들에게 도움이 됐다. 각자의 대학원 공부에 열중할 수 있었다. 충동 조절이 어려운 증상은 의류 사업을 하는 최씨에게 색다르게 작용했다. 개성 있는 디자인이 고객 호응을 부른 것이다.

김: 한 문제에 꽂히면 깊게 파고든다는 점이 도리어 저희에게 장점이 됐어요. 아무래도 대학원 연구는 한 주제를 깊게 다룰 일이 많잖아요. 저희는 책 읽는 데 시간을 오래 써요. 완독한 적은 없어요. 목차를 훑다가 흥미 있는 주제가 있으면 그 부분을 읽어요. 그리고 다른 책이나 자료를 참고해 가며 주제를 파고들어요. 같은 주제에 관한 여러 책을 비교해 가며 읽다 보면 다양한 관점을 배울 수 있죠. 사건의 맥락을 교차 검증할 수 있어 객관적 지식을 얻게 되고요. 결론적으로 주제를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이 생기게 돼요.

최: 의류 디자인도 비슷해요. 충동 조절이 어렵다는 점이 디자인에 있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했어요. 제 머릿속 이미지를 옷 위에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거든요. 제 디자인이 창의적이라고 말해주는 고객도 있었고, 또 그런 고객이 수익을 올려 주기도 했습니다.

환자가 새로운 관점이나 마음가짐을 가지면 ADHD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김: 젊은 ADHD 환자들이 전부 저희처럼 증상으로 강점으로 만들어가며 살고 있진 않을 거예요. 저도 처음부터 그런 마음가짐을 갖기 어려웠고요. 그저 병으로 인한 제 특성을 받아들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ADHD 환자는 본인이 ADHD라는 것을 인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본인에 대해 알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으면 훌륭한 성과를 이뤄낼 가능성이 우리에겐 있어요. 그러기 위해선 의심이 되면 즉시 병원에 방문하고 필요하다면 치료받는 행동이 필요해요.

최: 그리고 ADHD 환자라면 약을 꼭 챙겨 드세요. 생활 습관이나 의지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게 ADHD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는 것이 중요해요. 이것에 성공하면 말 그대로 신세계를 보게 될 거예요. 일어나 산책하거나 운동할 힘이 생기고, 규칙적인 생활을 만들어 가는 데 큰 도움이 되거든요.

ADHD와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한 김씨와 최씨. 동시에 우리 사회가 이 병을 대하는 폭력적인 방식을 아는 사람 역시 이들이다.

김: 사회적 편견이 정말 심해요. ADHD는 여전히 논쟁적인 질병이에요. 사회학적 관점에서는 현대사회가 작업능률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ADHD로 모두 매도하기 때문에, 이게 실은 존재하지 않는 병이라는 시각도 있어요. 증상이 흔한 현대인의 특징 정도로 여겨지다 보니 병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해요. 그래서 많은 ADHD 환자가 자기 의심을 해요. ‘내가 진짜 ADHD일까. 그냥 게으른 건 아닐까’ 하는 식으로요. 자학을 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 병을 게으름, 나태, 의지력 부족으로 보는 시선이 잔인하다고 생각해요. 성인 환자는 계속 증가 추세에 있는데, 자신의 병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은 여전히 조성되지 않았어요.

조수근 쿠키청년기자 sidekickroot@gmail.com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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