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세계 남녀 테니스 최강으로 군림한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세리나 윌리엄스(미국)가 나란히 은퇴를 선언하면서 테니스계 세대교체의 흐름이 더욱 빨라지게 됐다.
페더러는 지난 15일 자신의 SNS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3년간 부상과 수술이란 어려움을 겪었다. 다시 경쟁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난 내 몸의 능력과 한계를 알고 있다. 나는 41세이며 24년 동안 1500번 이상의 경기를 치렀다”라며 “다음 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레이버컵이 내 마지막 ATP(남자프로테니스) 경기가 될 것”이라고 은퇴를 선언했다.
페더러에 앞서 ‘여자 테니스 전설’ 윌리엄스도 정든 코트와 작별했다.
윌리엄스는 지난 3일 올해 마지막 메이저 대회 US오픈에서 호주의 아일라 톰리아노비치와 3회전에서 세트 스코어 1대 2(5-7 7-6<7-4> 1-6)로 패배한 뒤 “올해 US오픈은 생애 가장 놀라운 경험과 여정이었다”며 “살면서 한 번이라도 저를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선수로 뛰면서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고, 마지막 경기도 마찬가지였다”고 은퇴를 시사했다.
2000년대 최고의 테니스 스타
‘테니스 황제’로 불린 페더러는 2000년대를 풍미한 테니스 최고 스타다.
1998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페더러는 ATP 투어 통산 1251승275패(승률 82%)를 기록, 1274승을 올린 지미 코너스(미국)에 이어 최다승 2위에 올라 있다. 또 역대 두 번째로 많은 103차례 투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테니스계 최초로 ‘메이저대회 남자 단식 20회 우승’ 대기록을 달성했다. 윔블던 8회, 호주오픈 6회, US오픈 5회, 프랑스오픈 1회 정상에 등극했다. 메이저 남자 단식 우승 횟수는 나달(22승), 조코비치(21승)에 이어 뒤지지만 가장 먼저 20승 고지를 밟으며 이정표를 세웠다. 메이저 단식 경기 승수도 369승으로 1위에 자리하고 있다.
또 페더러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압도적 기량을 펼치며 '최강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는 테니스 세계 랭킹 제도가 도입된 이후 237주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지키며 최장 기간 연속 1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373주)에게 역전당하기 전까지는 통산 310주 동안 세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윌리엄스는 1999년 언니 비너스 윌리엄스와 함께 혜성처럼 등장했다. 당시 백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테니스계를 새로운 시대로 이끌었다.
윌리엄스는 1999년 US오픈을 시작으로 호주오픈 7회, 윔블던 7회, US오픈 6회, 프랑스오픈 3회 등 총 23차례 메이저 단식 우승을 이뤘다. 이는 1960~70년대에 활약한 호주의 마거릿 코트의 24회 우승 다음 가는 기록이다.
올림픽에서도 총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0년 시드니 여름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 여름올림픽에서는 언니 비너스와 함께 복식에 참가해 각각 금메달을 획득했고. 2012년 런던 여름올림픽에서는 단·복식 2관왕에 오르며 ‘골드 슬램’을 달성했다. 남녀 통틀어 슈테피 그라프·라파엘 나달·안드레 아가시와 더불어 단 4명밖에 없는 ‘커리어 골든 슬래머’(4대 메이저 대회 우승+올림픽 단식 금메달)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세대교체 앞둔 테니스계
레전드 선수들이 현역에서 물러나면서 앞으로 세계 남녀 테니스는 젊은 선수들이 이끌 전망이다.
남자 단식은 페더러와 함께 ‘빅3’로 불리던 라파엘 나달(36·스페인)과 노박 조코비치(35·세르비아)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도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나달은 올해 호주 오픈과 프랑스 오픈에서 연속 우승했지만, 윔블던 4강에서 복근 부상으로 기권했고, US오픈에서도 부상이 완치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 문제까지 겹치면서 16강에서 탈락했다. 조코비치도 올해 윔블던 대회에서 아직까지 백신을 맞지 않아 올해 호주오픈, US오픈에 아예 뛰지 못하는 등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빅3의 뒤를 이을 선수들도 최근 계속해서 출연하고 있다. 올해 US 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는 지난 12일 발표된 세계 랭킹에서 1위에 올랐다. 이는 테니스 세계 랭킹이 만들어진 이후 최연소 기록(19년 4개월)이며, 종전 기록이던 2001년 레이턴 휴잇(호주)의 20세 9개월을 1년 5개월이나 앞당겼다.
알카라스에 이어 세계 랭킹 2위 캐스퍼 루드(24·노르웨이), 4위 다닐 메드베데프(26·러시아), 5위 알렉산더 즈베레프(25·독일), 6위 스테파노스 치치파스(24·그리스) 등 탑 랭커들이 20대의 젊은 선수들로 구성됐다.
여자 단식에서도 2001년생 이가 시비옹테크(21·폴란드)가 2020년과 2022년 프랑스오픈에 이어 개인 통산 세 번째 메이저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고 '차세대 선두 주자'로 나섰다. 지난해 US 오픈에서 우승한 2002년생 에마 라두카누(20·영국)도 각광받는 유망주다.
하드 코트의 강자 오사카 나오미(25·일본)도 최근 부진을 떨쳐내고 다시 탑 랭커 자리를 노리며, 최근 두 차례 메이저에서 모두 준우승한 현 랭킹 2위 온스 자베르(28·튀니지)도 빼놓을 수 없는 선수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