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 텍사스촌' , '가게 언니'를 기다리며 [쿠키칼럼]

'미아리 텍사스촌' , '가게 언니'를 기다리며 [쿠키칼럼]

폭우 피해 입은 약국...한동안 심한 우울감과 무력감
집창촌 동네 이웃 꽃다발과 총각김치로 나를 위로

기사승인 2022-10-31 10:58:03
약사 이미선 
1961년 생.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서 태어나 현재 하월곡동 88번지에서 26년 째 '건강한 약국' 약사로 일하고 있다. '하월곡동 88번지'는 소위 '미아리텍사스촌'으로 불리던 집창촌이다. 이 약사는 이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약사 이모'로 불린다. 그들을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도 취득하여 주민 상담, 지역 후원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아주 조금이라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서울 속칭 '미아리 텍사스촌' 약사 이미선 캐리커처. 

[ 쿠키칼럼 ]

햇살의 꼬리가 짧아지면서 가을이 깊어가고있습니다. 지난여름은 잘 보내셨는지요? 유난히 덥고 습한 기운이 심했던 여름 한가운데 만났던 엄청난 양의 비와 그리고 바람…어린 기억 속의 여름 장마는 신나는 놀이터였지요. 맨발로 뛰어다니며 내리는 비를 모두 맞았고, 비에 젖은 온몸에선 김이 모락모락 났고, 집에 들어가선 엄마에게 엄청 혼이 났던 기억. 마르지 않는 빨래와 집안의 꿉꿉한 냄새들로 인해 엄마의 짜증은 폭발 일보 직전이었지요.

제게 장마의 기억은 찰랑거리는 물소리와 빗속에서 꼬물거리던 발가락들 그리고 엄마의 심한 꾸지람으로 가득 차 있었지요. 올여름 제가 만난 장마는 어릴 적 추억을 싹 밟아버리는 당혹과 아픔의 장마였습니다.

지은 지 오십 년이 넘어가는 낡은 약국 건물 지붕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그리로 들이친 비가 이 층 바닥을 통해 약국 천장과 벽을 타고 내려와 바닥에 고이기 시작했고, 약국 창고 천장도 비가 틈새를 뚫었고 쌓아놓은 약들이 젖기 시작했습니다.
약국 지붕. 지난여름 비가 새면서 약국이 침수됐다. 원인 파악을 위해 뜯어낸 모습이다. 사진=이미선 제공.

약국 바깥에서 내리치는 빗소리와 약국 안에서 떨어지던 물소리, 모노륨 바닥에 찰랑거리던 물소리, 그 모두가 커다란 함성이 되어 제 몸과 영혼을 모두 짓눌렸습니다. 악몽 같았던 8월 8일… 24시간의 하루가 정말 길었고 깊었습니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상황에 놓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어두웠고, 엄청난 압력으로 무겁고, 순환되지 않는 온몸의 핏줄은 완전히 막혀버렸습니다.

약국 바닥에 신문지와 폐지를 깔고 약국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타올과 비닐봉지로 받아내고 물이 고이면 타올을 짜고 신문을 바꾸고 그렇게 긴긴밤을 지새웠습니다. 약국 창고로 달려가 비닐로 가림막을 만들고 젖은 약을 한쪽으로 몰아 정리하고 그렇게 약국과 창고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제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갔습니다.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 나라는 작은 인간의 무기력함으로 인해 한동안 심한 우울감에 빠져있었습니다. 약국에서 일하고, 환자들에게 약을 주고, 아픈 몸에 대해 상담을 하면서, 삶의 힘듦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약사와 환자가 서로 위로하면서 수렁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습니다.

약국에 가득한 하수 냄새로 힘들어하는 저에게 많은 선물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냄새 없애는 양초, 뿌리는 방향제, 살아있는 장미 꽃다발, 혹시 밥맛 없을까 봐 총각김치를 담아오신 분도 있었습니다. 삶의 의욕과 밥에 대한 욕구가 정비례하지 않은 사람인 제게도 숟가락 들기가 어려웠던 그 며칠은 몸이 원하는 밥이 아닌, 머릿속의 의지로 밥을 먹곤 하였지요.

불과 며칠의 수해로 인해 약국 일부분이 망가졌고 제 마음의 조절 끈이 너덜거리는 압박 가운데 살았는데, 그 무게가 일상이 되고 수년을 그 무게 속에 살고 있다면 그 끝은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 오늘도 약국 창 너머로 그녀를 기다립니다.그녀와의 긴 인연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하려 합니다.
동네 '가게 언니'는 건강이 쇠약해져 간다. 간 기능개선제 등을 선물하니 "나도 교회 가도 될까요"라고 말한다. 교회가 제공하는 적은 선물을 건넸다. 

요며칠 '가게 언니'가 보이지 않는다. "자기야~"하고 호들갑 떨며(?) 약국 문을 밀고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다. 사진=이미선 제공. 

그녀가 ‘미아리텍사스’에서 일한 지는 십수 년이 넘었고, 항상 까칠한 얼굴과 피곤 가득한 목소리에 마음이 가던 친구였지요그래도 그리 짜증이 많다거나 불친절하게 날이 서 있지는 않았고, 가끔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하였습니다.

‘가게’ 이야기, 혹은 손님 이야기 혹은 자기 이야기…웃으며 이야기하였으나 말끝은 늘 흐렸고, 흔들리며 초점을 못 맞추는 눈동자…몇 년 동안 그녀를 지켜봤고 ‘약사 이모’라는 호칭과 , ‘자기야’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그런 사이가 되었으나 그녀의 얼굴색은 계속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에 대하여 많이 걱정하고 고민하지만, 꼭 필요한 약 외에는 지갑을 열지 못하였지요. 날로 나빠지는 본인의 몸 상태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이런저런 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어떤 약을 먹으면 되는지 궁금하여 약을 보여달라고 하였지만 머뭇거리는 그녀의 눈빛과 떨리는 손끝이 눈에 들어와 몇 번을 고민하다가 그녀에게 꼭 필요한 영양제와 간 기능개선제를 선물하였습니다.

무척이나 쑥스러워하는 얼굴로 선물을 받은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였답니다. 제발 약을 열심히 챙겨 먹으라고 부탁을 하였고, 이쁘게 손가락도 걸었지요. 한 달쯤 지나니 그녀의 얼굴색이 달라졌고, 맑고 밝은색으로 정말 좋아졌습니다.

변화를 지켜보는 나도 기분이 좋았고, 그녀도 아주 많이 신나 보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그녀에게서 딸아이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즈음이었고, 그녀의 깊은 어두움의 이유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편하게 딸아이의 손을 잡고 동네를 다닐 수 없었기에 엄마 따로, 딸아이 따로 그렇게 다니는 모습을 종종 보았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구제헌금이 늘어나 지역 이웃에게로의 나눔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생필품, 마스크, 맛난 간식거리, 목사님의 정성 가득한 편지…이웃으로 향하는 주님의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선물꾸러미를 받은 동네 분들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음에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녀에게도 그 꾸러미는 전달되었고, 교회 이야기를 물어보고 하나님 이야기도 물어보았습니다. “나도 교회 다녀도 될까?’” 그녀의 질문이었습니다. 순간 울컥하여 빠르게 답하지 못하였고 “교회 와도 돼…하나님은 누구나 품어 주시는 분이시니까.”

그녀와 주일에 교회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으나 그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화도, 문자도 카톡도 아무 응답이 없었지요. 동네를 왔다 갔다 해봐도 그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를 기다립니다. 어렵게 마음 열었던 그녀가 십수 년을 짓눌렀던 바위 뚫고 나온 그 몸짓이 다시 바위 밑으로 들어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별 일없이 출근 시간이 되면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그녀의 흔적을 찾으면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미루어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삶의 한 조각이라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그녀를 기다립니다. 그녀가 웃으면서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두 팔 가득 벌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ms6445@hanmail.net
전정희 기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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