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인상이 계속 이어지면서 시중은행의 금리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 이 가운데 금융당국은 시중은행들의 예·적금 인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최근 2금융권에 유동성이 급격히 부족해지면서 이를 관리해야하는 금융당국이 1금융권에 해당하는 시중은행의 자금유입을 막고자 나서는 것.
하지만 시중은행들로서도 은행채 발행이 막힌 상황에서 자금조달을 위해 수신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항변하면서 금융사들 간 입장이 치열하게 충돌하는 상황에 빠졌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1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25%p 인상했음에도 오히려 수신상품의 금리가 내려가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11월까지 시중은행에서 연 5%대 금리를 주는 예금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재 5대 시중은행 중에서는 우리은행 WON플러스예금이 연 4.98%로 가장 높다. 이 상품은 지난 13일 연 5.18%까지 금리가 올랐지만 최근 5% 아래로 내려갔다. 국민은행의 KB 스타 정기예금도 우대금리를 포함해 연 5%까지 올랐던 금리가 4.82%로 하락했다. 그나마 하나은행의 하나의정기예금 우대금리 요건을 충족하면 5.00%의 금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시중은행 이외의 은행에서는 SC제일은행의 ‘e그린세이브예금’이 최고금리 5.10%를 주고 있다.
지난 10월 한은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5%p 인상했을 당시 시중은행들은 경쟁적으로 수신상품의 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이번달만큼은 유난히 잠잠하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금융당국의 메시지에 있다.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을 상대로 수신금리를 올리지 말라는 경고 아닌 경고를 꾸준히 전달하고 있다. 실제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기준금리 인상 다음날인 11월25일 ‘금융시장 현황 점검회의’에서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 확보 경쟁은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린 당일 금융상황점검 회의를 개최하고 “역머니무브 현상이 최소화되도록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같은 금융당국의 경고는 예·적금 금리 인상 경쟁으로 은행이 시중자금을 흡수하고, 상대적으로 건전성이 취약한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유동성 부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왔다. 실제로 시중은행이 경쟁적으로 예금상품의 금리를 올린 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이 전월 대비 19조원 증가한 827조2986억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저축은행 수신 증가폭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저축은행 업계의 수신잔액은 116조5354억원으로 전달 대비 증가율이 0.6%에 머물렀는데, 지난 6월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또한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수신금리 상승이 대출금리 증가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예금금리가 오르는 것은 은행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많은 비용을 쓰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를 급등케 하는 요인이 된다. 주택담보대출이 코픽스와 연동돼 있는 만큼 코픽스가 오르면 주담대도 오른다. 실제로 은행권 변동형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는 10월 신규 취급액 기준 3.9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다만 이같은 금융당국의 정책을 두고 시중은행에서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금융당국이 예금 금리 인상 자제 기조를 유지할 경우 은행으로선 대출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워 질 수 있다. 또한 당국은 채권 시장 안정을 위해 은행채 발행도 자제할 것을 권한 바 있는데, 이를 종합하면 시중은행으로선 자금조달을 위한 주력 창구 두 곳이 모두 막힌 셈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정부가 기업에 대한 유동성 공급 역할을 당부하면서 기업 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인데, 원활한 자금조달이 갈수록 어려워 질 것으로 보인다”며 “뚜렷한 자금 조달 대책 없이 은행에 유동성 공급만을 압박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장이야 큰 문제는 없다고 하더라도 현 상황이 계속 지속된다면 시중은행에서도 대출공급을 줄이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가장 먼저 가계대출 부문에서 대출문턱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시중은행의 우려에 대해 금융당국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권대영 금융위 상임위원은 지난달 28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 직후 열린 브리핑에서 “현재 채권시장이 조금 안정되는 측면을 감안해서 은행채의 발행 방법에 대해 고민을 충분히 하고 있고 연말에 은행들이 어려움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