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 출신 올드보이들이 귀환하고 있다. 현 정부가 관료 출신을 두텁게 신뢰하는 것 같다” 국내 대형 금융회사의 한 임원은 최근 금융권 수장 후보로 관료 출신들이 대거 거론되는 것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임기 종료를 앞둔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의 후임으로 관료출신 인사들이 대거 거론되고 있다. BNK금융지주 회장에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거론되며,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기업은행장에 정은보 전 금감원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먼저 BNK금융지주는 지난달 외부 인사도 회장 후보로 추천할 수 있도록 ‘최고 경영자 경영 승계 규정’을 수정하고, 최근 외부 인사 추천을 위한 자문기관 2곳을 선정했다. 자문기관의 추천을 받아 회장 후보군에 외부 인사를 추가할 계획이다.
외부 인사로 거론되는 인물이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이전에는 재정경제부 1차관,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두루 거친 정통 금융관료다. 그는 올해 만 69세로 2003년 카드사태와 2011년 저축은행 부도 사태를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지만 외환은행 매각과 관치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라있는 인물이다.
농협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다. 그는 1959년 생으로 올해 만 63세다. 이 전 실장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고, 그 전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 기재부 제2차관,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지냈다. 이 전 실장은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후보 캠프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올해 4월부터 서울장학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기업은행장도 하마평에 올드보이들의 이름이 거론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금융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라임 사태 관련 중징계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현명한 판단’ 발언으로 낙하산 논란이 거센 가운데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59년생, 만 63세)이 하마평에 이름을 올렸다. 임 전 위원장 역시 박근혜 정부에서 금융위원장을 역임했으며, 경제 부총리까지 임명됐으나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부총리 활동에 나서지는 못 한 비운의 인물이다.
기업은행은 정은보 전 금감원장과 도규상 전 금융위 부위원장이 후보로 거론된다. 두 명은 앞서 다른 관료출신 인사들 보다는 비교적 젊은 편이다. 정은보 전 금감원장은 올해 만 61세, 도규상 전 부위원장은 57세다. 정은보 전 금감원장은 금융위 부위원장을 역임하고 금감원장을 거친 인물로 이복현 현 금융감독원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현재 보험연구원 연구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도규상 전 부위원장은 올해 5월까지 부위원장직을 수행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관료 출신 특히 모피아(기재부 출신)들의 복귀 조짐이 있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김주현 현 금융위원장이 10년만에 공직으로 복귀하면서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주로 기용됐던 인물들의 복귀가 예상됐다는 반응이다. 정권이 교체된 만큼 ‘인사 물갈이’는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현 정부의 경제정책 라인을 관료출신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당 국회의원을 거쳐 현재 경제정책 라인을 장악하고 있는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대표적인 모피아 출신이다. 그는 금융위 부위원장을 거쳐 국무조정실장과 기재부 제1차관을 역임한 바 있다.
오랜 시간 공직생활을 해온 윤석열 대통령의 관료 신뢰도가 높다는 반응도 나온다. 관료주의적 사고에 익숙한 윤 대통령 입장에서 관료출신 인사들과 손발을 맞추기 수월한 만큼 관료출신 인사들을 적극 밀어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경제관료 출신 인사들의 전문성을 무시할 수 없다”며 “그들 모두 엘리트 인재”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최근 금융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오래전에 현업에서 물러난 이들이 금융사, 그것도 민간 금융사 경영에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조직 내부의 반발도 거세 수장으로 선임돼도 조직 장악까지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금융권에서는 이같은 관료출신 인사들의 복귀가 낙하산 논란과 함께 제기되면서 남에 일이 아니라는 우려 섞인 반응도 크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은 몇몇 금융회사만 관료출신 낙하산 문제로 논란이 크지만 결국은 돌고 도는 문제”라며 “다른 금융사들도 조만간 CEO 교체 시즌을 맞이하기 때문에 남일 같지 않다”라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