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유명무실해진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권'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지 1년이 지났지만 보험사의 ‘독립 손해사정사’ 선임 비율은 제자리 걸음이다. 대부분 보험사가 손해사정법인을 자회사로 설립하거나 일감을 몰아주면서 보험사에 유리한 결과를 내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보험을 취급하는 삼성·현대·케이비(KB)·디비(DB) 등 국내 4대 보험사 가운데 최근 5년(2017~2021) 동안 소비자가 독립손해사정사를 선임해 사고를 처리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반면, 자회사 손해사정법인에 손해사정을 맡긴 비율은 5년간 76.4~80.8%에 달했다. 예를 들어, 삼성화재가 사고접수를 받을 경우, 자회사인 삼성화재서비스손해사정·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에 ‘손해사정’을 맡기는 비율이 10건 중 8건에 달한한다는 뜻이다.여기서 ‘손해사정’이란 보험사고가 발생했을 때 객관적이고 공정한 손해사실을 확인 후 손해액 산정으로 적정한 보험금이 지급되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대체로 보험금 지급 결정은 서류 심사만으로 이뤄지지만 손해액에 대한 전문적 판단이 필요한 경우 손해사정을 한다. 이 때 손해사정사는 조사업무를 통해 ‘손해사정서’를 보험사에 제출하게 되는데, 보험사는 이 손해사정서를 기반으로 보험금을 지급한다.
손해사정은 보험회사 직접고용 보험회사 업무위탁, 보험계약자가 선임(독립 손해사정)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현행 손해사정제도는 자기손해사정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보험업법 시행령에 예외 조항을 둬 자회사를 통한 손해사정이 버젓이 허용되고 있다.
게다가 국내 보험사의 손해사정은 대부분 직접 고용이나 위탁으로 이루어고 있다. 물론 보험소비자들이 보험사가 진행하는 손해사정을 거부하고 직접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다. 하지만 보험사의 설명 부족으로 소비자들은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권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보험에 관해서는 보험사가 손해사정내역서를 차주에게 지급하지 않아 수리, 매매, 폐차 중 어떤 것이 합리적인지 결정하기 어려워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우려가 있다.
지난 겨울 빙판길에서 넘어져 척추를 다친 직장인 이00씨는 담당 의사보다 재해·상해율을 낮게 제시한 보험사를 상대로 이의제기 후 독립손해사정사를 선임했다. 이씨는 독립손해사정사로부터 비슷한 판례를 근거로 제시해 3배 높은 보험금을 받았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보험설계사는 “피보험자가 수수료를 감당할 수 있다면 독립손해사정사 선임으로 더 많은 보험금을 받을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험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독립손해사정법인으로 가는 경우가 왕왕 있어 판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높은 보험금을 받으면 추후 보험료를 올리는 요인이 되어 피보험자에게 되려 불이익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보험업계 관계자는 “국내 4대 보험사 중 한 곳은 사망보험금을 노린 각종 범죄와 보험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거액의 보험금을 지급하기 전에 형사를 고용해 검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험금 지급과 관련된 이슈는 여러 사안이 얽힌 복잡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