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은 '땅의 벼락'이다…"입바른 소리 하는 자가 없다"[시사 漢字]

지진은 '땅의 벼락'이다…"입바른 소리 하는 자가 없다"[시사 漢字]

[MZ세대를 위한 시사 漢字 이해] 지진(地震)
강화 지진 소식 접한 정조 임금 "군신 상하가 정신 차려라...남의 비밀이나 들춰내고 있으니" 개탄

기사승인 2023-01-09 11:01:45
9일 새벽 인천 강화도 해상에서 규모 3.7 지진이 발생했다. 한밤중에 재난 문자를 받은 시민들은 “전쟁이 난 줄 알았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인천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3시 현재 인천 강화도 해상 지진과 관련해 모두 30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시민들은 "건물이 흔들렸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거나 "지진이 발생한 게 맞냐"며 소방당국에 문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소방본부 관계자는 "지진 발생 이후 관련 문의 전화가 접수됐다"며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아직 없다"고 설명했다.

접경 지역이어서 최근 북한의 무인기 비행과 미사일 발사 때마다 노심초사하던 강화도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지진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강화군 한 맘카페에는 지진 경험담을 전하는 게시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한 누리꾼은 "살면서 이런 공포감은 처음"이라며 "지진이라는 생각에 앞서 전쟁이 난 줄 알았다"고 토로했다. 또 "온 가족 휴대전화에서 재난 문자 알림이 울려 심장이 벌렁거렸다"거나, "속도 안 좋고 잠도 안 온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번 지진은 이날 오전 1시 28분께 인천시 강화군 서쪽 25㎞ 해역에서 발생했으며, 진원의 깊이는 19㎞로 파악됐다.(이하 생략·출전 서울경제)
'지진'을 풀어쓰면 '땅의 벼락'이다. 한국은 지진에 안전한 국가가 아니다. 이미지=픽사베이

□ 지진: 땅(地)의 벼락(震)

‘땅의 벼락’이라는 표현이 재밌다. 하늘에서만 벼락이 치는 줄 알았더니 땅도 벼락을 때린다. 옛 사람들은 비(雨=비 우)가 많이 내리는 등 자연 변화가 있으면 별(辰=별 진), 즉 우주가 충격을 받아 노한다고 보았다. 이를 진(震)이라고 정의했다.

지진의 현대 과학적 정의는 ‘지구에 오랫동안 누적된 변형 에너지가 갑자기 방출되면서 지각이 흔들리는 일’을 뜻한다.

그런데 이번 지진이 서해 강화도 해상에서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강도 높은 지진이 없어서 그렇지 지진과 무관한 땅은 아니다. ‘강화도 지진’만 하더라도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종 세종 연산군 중종 명종 인조 숙종 정조 임금 때 발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조가 말했다.

“…지난달에는 혜성이 나타나더니 오늘 새벽에는 또 지진 소리가 들리니 이야말로 군신 상하가 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분발 노력하여 완성도 높은 정책을 마련할 때가 아니겠는가. 아, 백천 가지 병폐는 다 언로(言路)가 막혀 있기 때문인데 구언(求言)의 기회를 간혹 마련해 봐도 입바른 말은 들을 수가 없고 다만 남의 비밀을 들춰내는 풍조만 일고 있으니….”

예부터 중앙 권력은 강화도 지진에 민감했다. 강화도는 넓은 섬에 벼농사가 가능하고 중국과 가까운데다 바다로 둘러싸여 대륙 오랑캐(몽골 등) 등에 대응이 쉬었다. 그러니 조선 정부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등을 겪으면서 요긴한 지역으로 삼고 ‘임금 대신 머물며 지키는 유수(留守)’라는 고위직을 두었다.

지금도 강화도는 북한과의 접경 지역인지라 그곳에서의 어떠한 변화라도 국가가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북한 도발의 사정권에 놓여 있는 주민들이야 위험 앞에 반사적 행동이 튀어 나오는 곳이 강화도와 그 인근이다.

그 예민한 곳에 지진이 발생했고 깊은 밤중에 경보가 울리니 주민들은 공포에 휩싸였을 것이다. 지진보다 무서운 게 전쟁이기 때문이다.

한편 정조의 얘기에서도 알 수 있듯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됐건, 전쟁 국면이 됐건,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고가 됐던 국가는 무한 책임을 진다. ‘주권에 의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회집단’이 국가여서다. 봉건사회에서조차 그러했음을 정조의 말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주권을 받들어야 할 공직자가 기강이 해이해져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조가 “군신 상하 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분발하여…”라며 언로(言路)가 막혔음을 답답해하고 있다.

신하가 임금께 바른 말 하는 것이 ‘언로’이다. 요즘 미디어가 이 언로를 대신하는데 정작 언론인이 수억 원 대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기레기'가 '부패하고 정의롭지 못한 언론인'을 뜻하는 신조어가 아닌 일반 명사가 될 지경이다.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사회. 그 보루 역할을 해왔던 언론 권력의 자본과의 결탁. 대한민국이 주권 사회가 아닌 ‘자본·권력자 국가’ 같다. 땅의 벼락이 필요한 것인가.

땅   
벼락

전정희 편집위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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