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에게 대출을 4년까지 연장해 주고 사기에 가담한 중개사에게 자격취소 등 무관용의 원칙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다음달 2일 관계 부처 합동 회의를 열고 전세 사기 피해 방지 대책을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빌라 수백 채를 소유하던 임대인들이 잇따라 사망하며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해서입니다. 특히 전세사기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공인중개사에 대출 전문 브로커까지 개입하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해당 계약이 사기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사기 사실을 인지하려면 계약기간 만료를 앞두거나 지금처럼 임대인이 사망하지 않는 한 피해를 인지하기 쉽지 않습니다. 결국 피해자는 대응이 어렵고 큰 피해로 이어집니다. 전세사기의 피해자도 2030세대의 사회 초년생 혹은 신혼부부 등 사회적 취약계층으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실제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사기 사실을 알고 난 뒤 잠도 못 자는 등 평범했던 일상이 무너졌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6일 서울 강서구 화곡역 인근의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박씨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박씨는 지난해 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명 ‘빌라왕 김모씨’의 피해자입니다. 빌라왕 김씨는 수도권 일대 빌라 1139채를 소유하다 지난해 10월 돌연 숨지며 세입자들은 전세금을 못 돌려받을 위기에 놓였습니다. 박씨는 “지난해 10월 집주인 사망 사실을 알았고 12월 가압류가 걸렸다”며 “전세사기 사실을 깨달은 뒤 잠도 못 자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가족들에게 말도 못 했다는 그는 초조해 보였습니다. 박씨는 “오는 5월 계약 만료를 앞둬 가족들에게 빨리 말을 해야 하는데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마음이 무겁다”며 손을 떨었습니다.
박씨는 서울 소재의 1.5룸에 보증금 2억3000만원에 계약했는데 이중 5000만원만을 제외하면 전부 대출이었습니다. 박씨는 “전세보증금을 못 돌려받을까봐 걱정이다”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며 계약 당시보다 전셋값이 떨어지며 깡통전세 등의 위험도도 높아진 상황입니다. 깡통 주택은 매매가와 전세가가 비슷해 지금같이 주택 시장 하락기에 전세금 반환을 못 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처럼 빌라왕 사기 이외에도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위험도가 높아지자 정부에서는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초 국토교통부 업무보고 당시 대규모 전세 사기 사건에 대한 피해 회복과 법률 지원, 강력한 처벌 등을 주문했습니다. 이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수조사를 통해 악성 중개인을 적발하고 자격취소 등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은행권에서는 임대인 사망 시 관련 서류를 제출하면 4년 이내로 전세자금대출을 연장에 나섰습니다.
정부가 여러 각도에서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정책이 사후 대책에 초점이 맞춰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같이 대규모의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는 경우 피해자의 구제 방안 마련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사기를 방지하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악성 임대인의 인적 사항 공개가 있습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9월 전세보증금반환보증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신 갚아준 전세금 변제를 장기간 방기한 악성 임대인 인적 사항을 공개하는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그러나 이법은 국회에서 1년 4개월째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악성 임대인 정보 공개를 통해 세입자들이 스스로 피해를 예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전세제도에 대한 손질도 필요해 보입니다. 실제 다수의 전문가들은 전세 제도의 허점을 지적했습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자금은 서민 대출로 강조하다 보니 너무 많은 자본이 시장에 풀려져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송 대표는 “상환능력을 고려해 전세자금대출의 비율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도 사전적 대책을 강조했습니다. 권 교수는 “전세보증금 반환보험을 가입하는 경우 계약서를 내고 얼마 정도 보증 받을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또한 그는 “원금이자 유예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같은 고금리에 갭 투자자 등이 허덕일 경우 현재 납부해야 하는 이자를 3~4년 후에 원금과 포함해서 내게 해 이자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것입니다. 권 교수는 “이자 유예 제도를 시행하게 되면 깡통 전세나 영끌족 등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세사기를 당한 후의 구제는 늦습니다. 피해자의 일상이 파괴되기 전, 계약 시부터 세입자가 전세사기의 위험성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는 그보다 나아가 세입자가 전세사기의 불안에 떨지 않도록 사전적 대책 방안 마련에 힘써야 합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