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누나한테 영상통화에 성공하면 돈을 빌려준다고 했어요.”
29살 A씨가 대부업체로부터 들은 말이다. A씨는 일정 소득이 없고, 휴대폰 소액결제로 연체금이 불어나 지난해 12월 대부업체를 찾았다. 대부업체 관계자들은 A씨에게 간단한 개인 정보를 확인한 뒤 A씨의 친인척 관련 신상을 물었다. 업체관계자들은 “사촌누나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전화가 연결되면 100만원을 빌려 주겠다”고 말했다. 빚을 갚지 못할 때를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A씨는 사촌누나에게 세 차례 영상통화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후 다른 지인들과 영상통화가 불발되어 100만원 대출을 받지 못했다. A씨는 “대출 금액이 50만원이 넘어가면 친인척과 영상통화가 필수고, 50만원 아래로는 간단한 서류만 작성하면 대출이 가능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A씨의 사촌누나 B씨는 사촌동생이 평소와 달라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평소 연락을 하지 않던 사촌동생이 근무시간에 잘 지내냐는 메시지를 보내서 답장을 했더니 대뜸 영상통화를 걸었다”며 “처음엔 당황해서 전화를 받지 않고, 메시지만 보냈다”고 말했다. 이후 B씨는 A씨로부터 두 차례 더 영상통화가 걸려왔지만 찝찝한 마음에 끝까지 통화에 응하지 않았다.
B씨가 A씨와 영상통화를 수락 했다면, A씨는 대출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B씨는 동의 없이 자신의 얼굴과 신상이 공개될 수 있었다.
급전창구 막히니 불법사채 창구로
최근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불법사채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의뢰받은 6712건의 불법사채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평균 이자율이 연 414%으로 집계됐다. 연 환산 이자율이 법정 최고금리인 연 20%를 넘으면 모두 불법에 해당하는데 급전을 찾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대출 유형은 급전(신용)대출이 6574건으로 가장 많았고, 일수대출이 112건, 담보대출 26건이 뒤를 이었다. 불법 사채 피해자의 평균 대출금액은 382만 원이었으며, 평균 거래 기간은 31일로 나타났다. 대부분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이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대출 중개 플랫폼 홈페이지를 통해 대출 거래가 가능해졌는데, 이 중에는 미등록 대부업체도 포함되어 있다. 중개 역할을 담당하는 플랫폼은 등장했지만, 소비자와 대부업체 사이에 거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모니터링과 관리는 미비하다. 대출 중개 플랫폼이 등장하기 전에도 불법사채 관리 감독이 어려웠는데 중개 플랫폼 등장으로 그 규모가 더욱 늘어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센터의 신고 건수는 2020년 7351건, 2021년 9238건이다. 지난해 8월까지 신고 건수는 6785건이며, 연간 신고 건수는 2021년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은행이나 카드사에서 더 이상 대출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불법사채를 찾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고금리를 감당하는 것도 문제지만, 채무자 주변인들의 정보가 유출된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대부업계 관계자는 “불법사채인 것을 모르고 응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면서 “급전 창구가 막혀 오히려 큰 리스크를 감당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출 문턱을 낮추는 것도 필요하지만 플랫폼 중개 및 불법 대부업체 관리 감독이 함께 병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미등록 대부업체는 금융감독원 등록대부업체 통합조회 서비스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부 중개 플랫폼을 통하더라도 해당 대부업체가 최소한 금융당국이나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된 곳인지 확인할 것”을 당부했다.
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