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첨단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술 확보 및 주력산업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525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철강업계의 담합 관행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9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현대제철 동국제강 대한제강 한국철강 와이케이스틸 환영철강공업 한국제강 등 7개 제강사와 화진철강 코스틸 삼승철강 동일산업 등 4개 압연사는 2012~2018년 조달청의 철근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 물량을 배분하고 입찰 가격을 합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제철 등 11개사는 2012~2018년 동안 조달청이 정기적으로 발주한 희망수량 경쟁방식의 철근 연간단가계약 입찰에 참가했다. 이 과정에서 사전에 자신들이 낙찰 받을 전체 물량을 정해 이를 각 업체별로 배분하고 투찰가격을 합의한 혐의를 받는다. 공정위는 11개사에 256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철강업계는 공정위의 결정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 등 대응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업체별 과징금은 현대제철 866억1300만원, 동국제강 461억700만원, 한국철강 318억3000만원, 대한제강 290억4000만원, 와이케이스틸 236억5300만원, 환영철강공업 206억700만원, 한국제강 163억4400만원 등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대제철을 포함한 철강업계의 행정소송에 대해 “과징금 금액이 크면 행정소송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철강업계의 담합 실태가 드러난 계기는 조달청이나 경쟁 사업자가 신고해서 제보를 통해 알게되기도 하고, 철근 가격이 갑작스럽게 폭등하면 공정위에서 조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간재에 해당하는 철근 입찰 가격을 담합하면 가격이 올라 소비자의 후생이 저하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철근은 집이나, 도로 건설시 사용돼 가격이 오르면 공사비용이 오르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철강업계 중 가장 많은 과징금을 납부해야 하는 현대제철 관계자는 “통상 과징금은 매출액을 기준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철강 규모가 가장 큰 현대제철이 많은 과징금을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철강은 품목이 많고 시황 사이클도 다르다”면서 “철강사들이 철근의 품목에 한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가격을 결정해 매월 가격을 고시한다”고 말했다. 또 “철강사에서 사용하는 원료가 거의 같아 담합을 하지 않아도 가격이 거의 똑같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익명의 철강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담합을 논의하지 않았더라도 공정위는 주요 철근 제조사들이 모이면 담합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2007~2008년에는 ‘슈퍼사이클’로 가격이 올라 관철사와 철근제조사와 가격 협의가 어려웠는데, 산업부에서 제강사와 건설사, 철근제조사 등 담당자들이 모여서 가격을 결정하라고 권고했다”면서 “이를 위해 모였을 때도 공정위에서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철근 입찰 담합 협의를 받는 현대제철 등 11개사의 입찰참가 자격이 제한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중간제 담합으로 물가가 올라 국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