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유보통합…유치원 교사 반발·우려 이유는

갈길 먼 유보통합…유치원 교사 반발·우려 이유는

교육부, 어린이집·유치원 2025년부터 단계적 통합
유치원 교사들 “유보통합 방안, 졸속 추진돼서는 안 돼”

기사승인 2023-02-15 06:00:18
어린이집.   쿠키뉴스 DB

정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하나로 합치는 ‘유보통합’을 오는 2025년부터 시행하겠다고 운을 띄운 이후 현장에선 연일 반대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 나뉜 유아교육과 보육을 통합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지만 유치원 교사들은 ‘졸속 행정’이라며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14일 교육계에 따르면 정부의 유보통합 방안을 두고 교육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교육부가 유보통합 계획을 발표하면서 가장 민감한 부분인 교사 자격기준과 교사 양성체계 개편 등을 구체화하지 않아 혼란이 가중한다는 지적이다. 

유보통합은 영유아의 취학 기관에 따라 학부모 부담이나 교육·보육의 질적 차이가 발생한다는 문제 의식으로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추진이 논의됐지만, 자격 요건이 다른 유치원교사-보육교사 통합 등에 해법을 찾지 못해 교육계의 오래된 난제로 꼽혀왔다. 

앞서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참교육학부모회)는 논평을 통해 “이해관계자의 기득권 지키기에 휘둘리지 말고 영유아의 행복을 중심에 두고 정책을 추진해 반드시 유보통합을 이뤄내길 촉구한다”며 환영의 목소리를 냈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좋은교사운동도 취지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냈다. 

다만 교총 등은 유보통합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정부에 유아교육계와의 적극적인 소통과 구체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총과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는 전날 “유아교육의 중추인 유치원의 교육여건을 개악하거나 유치원 교사의 신분·자격·처우를 저하하는 어떠한 유보통합 방안도 졸속으로 추진돼서는 안 된다”며 “ 이번 유보통합 추진계획에는 보육계와 사립유치원에 대한 지원·변화상만 제시됐을 뿐 정작 정부가 가장 신경써야 할 국공립유치원과 국공립유치원 교원에 대한 발전 및 지원방안은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발도 거세다. 유치원 교사들은 지난 12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주최로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부근에서 유보통합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전국교사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번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약 3000명의 교사들이 참가해 유보통합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6일에는 국회에 ‘현실성 없는 유보통합 반대에 관한 청원’이 동의 5만명을 넘어 국회교육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이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가진 전국교사결의대회에서 윤석열식 유보통합을 전면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전교조

여러 쟁점 중 핵심은 통합으로 인해 유치원교사와 보육교사의 자격이 동등해지는 것이 불공정하는 것이다. 유치원교사의 경우 전문대 이상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정교사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특히 국공립유치원 교사가 되기 위해선 사립유치원과 달리 유아 임용고시에 합격해야 한다. 반면 어린이집 보육교사 자격증은 관련 학과를 나오지 않더라도 최소 전문학사 학위를 보유하고 학점은행제를 통해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면 자격이 주어진다.  

유치원교사들은 어렵게 딴 자격 여건이 하향되는 역차별을 우려하고 어린이집교사들은 유보통합 이후 현재 자격으로 근무에 차별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실제 보육교사 커뮤니티에는 보육교사 2급 자격증 외에도 유치원정교사 자격등을 취득해야 하는지 묻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국공립유치원 교사 A씨는 “국공립유치원 교사가 되기 위해 수년간 열심히 공부해 임용고시를 통과했다”며 “비슷한 연령을 맡았다는 이유로 자격을 통일하는 것은 역차별”고 말했다. 

또 다른 쟁점은 유아교육과 돌봄은 엄연히 다른 분야인 만큼 각각의 전문가에게 영유아를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만 0~2세는 보육기관, 만 3~5세는 유아학교로 연령에 따라 교육기관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사립유치원 회계 투명성 강화와 공립유치원 확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유보통합 방침이 확정됐지만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는 상황을 두고도 우려가 나온다.

이같은 우려에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6일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각각 방문해 “양 기관의 장점을 모두 녹여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도 ‘유보통합의 오해와 진실’이라는 자료를 내고 “유보통합은 현재의 근로 여건을 상향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며 논의 과정에서 아이들의 교육·돌봄에 집중할 방안도 함께 논의하겠다”며 “유보통합은 어느 기관을 이용하더라도 양질의 교육과 돌봄 서비스를 차별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정책. 현직 교사 등이 참여하는 유보통합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충실히 논의해 2023년에 시안을 발표하고 현장 의견수렴을 거친다음 2024년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오해를 바로 잡는다며 연일 해명에 나서고 있지만 교사들은 물론 아이를 기관에 맡겨야 하는 학부모들의 불안은 커지고 분위기다. 

만 3세 아이를 둔 김모(36)씨는 “2025년에 실시될 정책의 세부지침을 2024년에 제시한다는 게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무슨 계획도 없어보이고 현장 혼란은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데 당연히 불안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워킹맘 이모(38)씨는 “자격증을 갖춘 교사라고 해서 교육의 질이 대단히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다만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오랜기간 다르게 운영돼 온 만큼 차이가 너무 큰데 정부가 명확한 로드맵도 없이 일괄적으로 밀어붙여 교사들의 반발만 사고 있으니 아이들에게 혼란만 가중될 것 같다”고 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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