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묘사직소, '조선을 움직인 한 편의 상소'

을묘사직소, '조선을 움직인 한 편의 상소'

바른말이 사라진 우리 시대, 조식(曺植)의 직언(直言)을 읽는다!

기사승인 2023-03-09 10:56:41
서슬 푸른 칼날이 쏟아진다! 불의한 날불한당들의 시대였다. 명종(明宗) 즉위 초기 대궐에는 유학자들의 시신이 쌓이고, 논밭에는 백성들의 시신이 썩어갔다. 유학자 조식은 이와 같은 시대에 지식인으로서 가만히 팔짱을 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말해야 할 것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조식은 '을묘사직소'를 올려 당시의 정치에 대한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 상소의 형식은 막 제수받은 현감 직을 사직하는 사직 상소였으나 상소의 내용은 격렬했다. 임금인 명종을 어린아이라고 말하고 대비인 문정왕후를 과부라고 말한다. 


곧 임금은 임금이 아니고 대비는 대비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권력을 독점한 권신(權臣)들을 향해서는 '야비한 승냥이 떼'라는 독설을 퍼붓는다. 왕조 시대 임금의 권위를 생각하면 이는, 조식이 상소문 위에 자신의 목을 잘라 올려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놀라운 것은 목숨을 건 언사만이 아니었다. 조식은 당대의 학문인 유학의 이념과 논리를 바탕으로 치밀한 논리를 전개했다. 당시 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핵심을 곧바로 짚어내고, 또 담대하면서도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했다. 누구도 이 '을묘사직소'의 말에 이렇다 할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었다. 

'을묘사직소'는 유학자의 정신, 학문하는 자의 역할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후 이 '을묘사직소'는 조선의 뜻있는 유학자들에게 '상소'의 전범(典範)과도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이로써 유학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쫓는 일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인지 알았다. 그리고 의(義)로움을 따라 살고자 노력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지식인이 사라진 시대다. 지식인의 직언을 들을 수 없는 시대다. 아무도 공의(公義)를 말하지 않는다. 때로는 공인이라는 이름 뒤에 숨고 때로는 전문가라는 이름 뒤로 물러난다. 말해야 할 일을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곡학아세(曲學阿世)와 견강부회(牽强附會)가 판을 친다.

조선의 유학자, 조식 1500년대 경상도 일대의 산림에 머물며 학문에 몰두했던 유학자다. 성리학 이론보다는 실천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황과 같은 시대를 살았는데, 당대의 학문적 위상이나 이후의 역사에 미친 영향은 이황 이상이었다.

여남은 번 이상 벼슬을 제수 받았지만 단 한번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간신들이 권력을 잡고 얼토당토않은 정치를 펼치는 때에 벼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의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이에 상소를 올려 조정의 정치를 정면으로 추궁했다. 

1555년 을묘년에 명종에게 올린 '을묘사직소'에서는 "전하의 나랏일은 이미 잘못되었다"라고 썼다. 이로써 유학자의 마땅함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올바른 유학자의 전형을 세웠다.

1501년 경상도 삼가현(현재의 합천군 삼가면)의 외가에서 태어났고, 1572년 진주목 덕산동(현재의 산청군 시천면)의 산천재(山天齋)에서 일생을 마쳤다.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이다. 제자들이 그의 글을 모아 묶은 '남명집'을 통해 그의 삶과 학문을 접할 수 있다.

△책 속으로

유도지사는 하늘의 명령을 두려워하고 백성의 곤궁함을 가엾게 여기며, 말해야 할 것을 알면 말하고, 말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면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람입니다. ㅡ42쪽

지금 전하의 나랏일은 매우 잘못되고 있습니다. 전하의 나랏일은 마치 새의 양 날개가 서로 다른 쪽을 향해 퍼드덕대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다면 나라의 근본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서경'에서는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건해야 나라가 편안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백성의 삶은 굳건하기는커녕 엉망진창입니다. 하늘의 뜻 또한 전하를 떠났습니다. ㅡ48쪽

비록 대왕대비께서는 성실하고 뜻이 깊다고 해도, 문이 겹겹이 달린 궁궐에서만 살아와 세상 물정을 알지 못하는 과부(寡婦)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전하께서는 임금의 책무를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일 뿐이니, 다만 돌아가신 선왕의 외로운 자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ㅡ57쪽

지금 우리나라에는 능력도 없는 자들이 간장종지만한 명성을 팔아 마치 노름판에서 판돈을 탐내듯 전하의 녹봉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녹봉은 곧 백성의 피와 땀이니 함부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ㅡ66쪽

인재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찾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전하께서 만약 자신의 덕을 닦는 것으로서 인재를 찾는다면 현명한 이들이 천 리 길도 멀다 여기지 않고 달려올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전하의 유악에는 충심을 다해 임금을 섬기고 이로써 사직을 지킬 만한 인재들이 가득할 것입니다. ㅡ102쪽

진실로 전하께서는 할 수 있습니다. 하루를 끝마칠 때까지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는 자세로 스스로를 경계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곧 자신을 삼간다(敬)는 말입니다. 전하께서는 삼감으로써 분연히 떨쳐 일어나 학문(學問)에 힘을 쏟을 수 있습니다. ㅡ122쪽

조선 제일의 상소 '을묘사직소'를 가장 알기 쉬운 '빙고(憑考)' 번역으로 읽는다!

조식의 '을묘사직소'는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파천황(破天荒)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상소는 조선의 상소 중 첫손가락에 꼽힐 만큼 유명하다.

그러나 요즘의 우리들 중 이 '을묘사직소' 전문을 직접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이 상소문을 읽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말은 알쏭달쏭하고 뜻은 어렴풋하다. 한문 원문은 말할 것도 없고 한글 번역문조차 읽기 힘들다.

한문으로 쓰인 글은 많은 전고(典故)를 포함한다. 전고란 경전이나 역사책에 나오는 사건과 인물, 과거의 제도나 관습 등을 말한다. 전해 오는 성현의 말씀이나 옛날의 사실 이야기를 근거로 삼아 현재의 일을 말하고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엄격한 관행을 따르는 상소문은 좀 더 많은 전고를 사용한다. 임금에게 아뢰는 상소문에는 조금이라도 사실과 다른 부분은 있을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전고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을묘사직소'의 기본적인 문맥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을묘사직소'를 읽는 일의 어려움은 단지 전고 때문만은 아니다. 글과 말로 표현하는 일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조식의 표현 방식이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조식은 "말은 간략한 것을 귀하게 여긴다(言以簡爲貴)"고 생각했다. 주희(朱熹)와 같은 위대한 학자들이 유학의 이념을 밝힌 송나라 시대 이후로는, 굳이 "글을 쓸 필요가 없다(不必著書)"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제자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실마리만을 알려 주었다.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은 '을묘사직소'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이에 이 책에서는 현재의 독자가 '을묘사직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글자 한 글자 가능한 한 자세하게 풀이한다.

전고의 경우, 어떤 상황에서 이 전고가 만들어졌는지 전고의 출전과 유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전고는 500년 전의 유학자들이라면 대부분 이미 알고 있어 굳이 길게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에게는 별 다른 사전 지식이 없다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생소하기만 한 것이다.

그러므로 해당 전고의 출전은 물론, 때에 따라서는 원문의 일부까지 인용해 소개한다. 조식 당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왜 이와 같은 사건이 일어났는지, 조식은 어떤 맥락에서 이 일을 언급하는지 살펴본다.

번역문의 일부로서 풀이하기도 하고 주(注)를 덧붙여 부연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축어(逐語) 번역과는 꽤 다르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주해(注解) 번역'이라 할 수도 있고 '빙고(憑考) 번역'이라 할 수도 있다.

주해(注解)란 본문의 뜻을 알기 쉽게 풀이한다는 말이고, 빙고(憑考)란 여러 가지 근거에 비추어 상세하게 따져본다는 말이다. 이 책은 구구절절 소상하게 풀이한다. 풀이하고 또 풀이한다. 번역서라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다. 그러나 이 책의 옮긴 이는 지금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번역서도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본다.

'을묘사직소'는 땅에 발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 유학자 조식의 학문을 담고 있다. 백성의 고통을 생각하며 통곡하던 선비 조식의 애탄 절규를 들려 준다. 대장부 조식의 높고 굳센 기상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조식의 모습을 현재의 독자들에게도 생동감있게 전달하고 있다.

진주=강연만 기자 kk77@kukinews.com
강연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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