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은행이 망한다…‘뱅크런’의 공포 [알기쉬운 경제]

하루만에 은행이 망한다…‘뱅크런’의 공포 [알기쉬운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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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3-03-15 06:05:02
실리콘밸리은행(SVB).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주말 사이 전 세계에 충격을 가져다 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이죠. 전 세계에서 최고로 치는 금융산업을 일궈낸 미국에서 40년이 넘어가는 역사를 가진 은행이 불과 36시간에 망하게 된 것을 실시간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은행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고 1위 ‘뱅크런’

이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선 ‘뱅크런’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뱅크런을 정의하자면 ‘은행에서 단기간에 예금의 대량 인출요구가 일어나는 사태’를 말합니다. 시중은행 재직자들에게 ‘은행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백이면 백 뱅크런을 말할 만큼 무시무시한 일이죠.

뱅크런의 발생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은행 특유의 자금운용 방식이 있습니다. 은행은 예금자들로부터 받은 예금을 이용해 대출을 실시하고, 유가증권 등에 투자를 하며, 일부는 예금자들의 예금 인출 요구에 대비하여 지불준비금을 마련해놓습니다. 지불준비금은 예금자들이 맡겨놓은 금액의 전부가 아닌 일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모종의 이유로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예금 인출을 위해 은행으로 몰려든다면 은행은 짧은 시간 내에 지불준비금만으로 충당할 수 없게 됩니다. 대출로 나간 돈과 구매한 유가증권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 상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러면 뱅크런이 발생합니다.

다만 해당 예시는 뱅크런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예시일 뿐입니다. 실제 뱅크런이 일어나는 대다수는 ‘예금자들의 은행에 대한 신뢰 상실’에서 대부분 발생합니다. SVB 사태도 이 경우에 해당하고요. 

SVB 홈페이지.

SVB는 어떻게 36시간만에 무너졌나

좀 더 구체적으로 이번 SVB의 뱅크런의 원인을 찾아볼까요. SVB는 실리콘밸리의 성장과 함께 규모를 키워왔습니다. 일반적인 금융사들처럼 거대 기업들과 거래하기보다 스타트업들과 거래를 트며 꾸준히 성장세를 키워왔고, 코로나19 당시 넘쳐나는 유동성에 힘입어 수많은 스타트업들에게 예금을 받게 됐습니다.

은행으로선 예금이 마냥 늘어나는게 좋은일이 아닙니다. 대출이 같이 나가야 돈이 되는데 현금부자 스타트업들은 대출을 잘 안받아갔거든요. 그래서 SVB는 초 우량자산으로 분류되는 미국의 장기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 운용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인플레이션은 SVB의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금리가 올라가며 단기 채권의 가격도 올라갔지만 장기채의 가격은 폭락했거든요. 또한 코로나19로 시작된 ‘유동성 파티’도 끝이 나면서 SVB의 고객들인 기업들이 예금 인출을 요구해왔고, 지불준비금만으로 부족해진 SVB는 ‘헐값’ 상태에 놓여있는 장기채를 손해를 보며 판매, 손실이 발생합니다. 3월8일 SVB는 약 18억 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공시합니다. 대신 SVB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22억5000만달러(3조원) 규모의 증자를 발표합니다.

여기서부터 재앙이 발생합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CEO(최고경영자), 재직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슬랙, 와츠앱 등 사회관계망서비스로부터 해당 소식이 퍼져나갔고, 거래 은행의 ‘위기’ 소식을 듣게 되자 SVB와 거래하고 있는 고객들이 일제히 예금을 인출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만에 SVB에서 빠져나간 돈은 무려 420억 달러(56조원)에 달합니다. 결국 SVB는 뱅크런을 막아내지 못하고 40년 역사를 끝맺게 됐습니다.

뱅크런과 스마트폰의 아이러니

뱅크런이 무서운점은 ‘전염성’에 있습니다. 가장 신용도가 높은 금융사인 은행의 신뢰가 상실됐다는 것은 금융 전체의 신뢰 상실과도 직결될 수 있는 문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추가로 뱅크런이 발생한 시그니처은행은 SVB의 뱅크런 때문에 덩달아 연쇄 뱅크런이 발생했다는 원인 분석이 나올 정도니까요.

또한 이번 뱅크런은 스마트폰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됩니다. 이전 스마트폰 뱅킹 앱이 등장하기 전에는 고객들이 직접 은행 영업점에 방문해야 했지만, 스마트폰으로 자금이체가 쉬워진 지금은 오히려 뱅크런이 발생하기 쉬운 상황이 됐다는 것이죠.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보험 스타트업 ‘커버리지 캣’의 설립자 맥스 조는 지난 9일 몬태나주 빅스카이에서 열린 창업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공항에서 내려 버스에 올랐을 때 동료 창업자들이 모두 미친 듯이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또한 SNS가 은행이 파산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부추겼다는 점도 한 몫 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은행들이 파생상품 등 위험 자산에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파산했던 것과 달리 이번 SVB 사태는 금융기관의 핵심 자본인 보유 예금과 자산의 가치가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손실이 발생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손실이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2008년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였음에도 스마트폰 SNS로 퍼져나간 공포는 은행 앱을 키게 만들고 자금 인출을 이끌어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SVB사태는 채권투자 비율이 높았던 특수성이 만들어낸 비극이자,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유서깊은 격언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만드는 사건으로 기록되겠지요.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

김동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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