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일 많은 의사… 별 볼일 없는 대한민국

별 볼일 많은 의사… 별 볼일 없는 대한민국

-환자와 별, 새의 동반자 의사 정기양
-별을 보며 무한 우주에 큰 관심
-사람도 동물도 잠 못 이루는 밤

기사승인 2023-03-27 05:02:02

-대한민국은 빛공해 1위국
-NGO단체 만들어“생태계 건강 지켜내겠다”

“별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빈센트 반 고흐가 밤하늘의 무한함을 동경하면서 한 말이다. 반 고흐만큼이나 별과의 사랑에 푹 빠진 별지기 의사가 있다. 피부암 명의 정기양 박사(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피부과 교수‧64)이다. 정 교수는 피부암 절제수술인 ‘모즈미세도식수술’을 단일병원에서 4000례 달성(2022년 12월)한 피부암 분야에서는 세계가 인정하는 대가이다.
정기양 교수는 지난 3월 8일부터 10일까지 태국피부과학회 초청으로 태국 방콕을 다녀왔다.  정 교수는 이번 학회에서 주초청강연자로 수술흉터를 최소화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하고 또한 태국왕립병원인 시리랏병원에서 태국 의료진에게 자신의 전공 분야인 모즈미세도식수술과 재건술, 켈로이드 수술, 지방이식술 등을 전수하고 돌아왔다. 별 모양의 수술모를 쓴 정 박사가 태국 의료진에게 수술법을 전수하고 있다.

 별을 보며 꿈을 키운 소년, 정기양
정 박사는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면 충남 온양 할아버지 댁에 내려가 밤하늘 별을 봤다. 형과 누나, 사촌형제들과 돗자리에 누워 음악을 들으며 별을 보면서 미래를 꿈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에 위치한 공군 산하 물리연구소 교환교수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1년 반 미국생활을 경험했다. 당시 한 마을에 살던 동네 아저씨가 조그만 천체망원경으로 달과 금성, 목성 등 행성들을 마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설명을 해줬다. 어둠이 내린 저녁 망원경 속에는 달의 분화구와 산맥들이 관찰되었는데 그때 떨리던 감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28인치 돕소니안 반사망원경 앞에서 정 교수가 잠시 포즈를 취했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후배 의사인 곽지용(37·안과) 교수는 “정 교수님은 따뜻한 표정으로 늘 환자들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면서 “겸손하면서도 학식과 덕망이 높아 의료진 모두가 존경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72년에는 ‘자코비니 유성우’를 관찰하기 위해 일본에서 아마추어천문가협회 사람들이 대거 몰려왔고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아마추어천문가협회가 발족되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정 교수도 협회에 가입해 남이섬에서 별똥별이 비처럼 쏟아지는 별들의 향연을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펼쳐질 별 감상의 기초가 되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천문학과 보다는 의대 진학을 권유한 부친의 뜻에 따라 의대에 진학한 그는 대학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거금 백만원을 주고 8인치 복합반사천체망원경을 구입했다.
인제 운이덕천제관측소에서 초저녁 관측된 달과 목성과 금성

 “서울 하늘에서 은하수를 감상했어요”
정 교수가 망원경을 구입했던 79년 당시에는 등화관제훈련이라는게 있어서 동시에 서울 전체가 소등하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 성산동에 살던 정교수는 2층 옥상에서 캄캄한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은하수와 여러 외부 은하, 성운, 성단들도 마음껏 감상했다고 기억한다.
정기양 박사와 정남택 대표(사진 우측)가 천체망원경 사이로 손을 흔들고 있다.
정 대표는 “정 박사님은 자상한 분이다. 농사짓는 분, 외국 의사제자, 사진가 등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가리지않고 다방면에 친구들이 골고루 있다. 10년 넘게 함께 별을 봤지만 한결같은 분”이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존경하고 좋아할 것 같은 큰 형님 같은사람”이라고 말했다.

이후 정 박사는 수련의, 전공의, 군의관, 전문의 시절에는 휴일조차 시간내기가 어려워 별보기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 필라델피아 연수시절인 1994년, 90mm 굴절망원경을 구입해 틈틈이 교외로 나가 별을 관찰하다 귀국해 연세대 병원에 조교수로 복귀했다. 하지만 당시 개업열풍이 불면서 동료 피부과 의사들이 대부분 대학병원을 떠나면서 정 박사는 또 다시 10여년은 진료에만 매달리느라 별 볼일이 없었다고 했다. 그 대신 그는 의사로서 본업에 충실하면서 피부암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 명의로 명성도 쌓아갔다. 다행히 2007년 후배 의사가 배치되고 여유가 생기면서 새롭게 140mm 굴절망원경과 15인치 반사망원경도 구입했다.
한겨울 눈밭에서 정 박사가 촬영한 긴점박이올빼미

그는 별보는 일만큼 관심이 많았던 조류관찰을 위해 망원렌즈도 구입해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새를 촬영하고 밤에는 별을 관찰했다. 별지기들의 모임인 ‘야간비행’에도 가입해 틈나는 대로 빛공해가 적은 산과 들을 찾아 나섰다. 정 박사는 천체 관측 중에서도 먼거리의 어두운 대상들을 관찰하는 딥 스카이(deep sky)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정 교수에게도 시련의 시간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자문의를 역임하고 4년 후인 2017년, 뜻하지 않게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2달 간 옥고를 치른다. 그는 구치소 안에 있는 동안 우주 속 먼지보다 작은 사람들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안절부절 쫓기듯 살아가는 모습과 함께 자신의 존재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태국 Siriraj 병원에서 개최된 지방을 이용한 치료에 대한 워크숍에서 경피증의 후유증으로 얼굴이 함몰된 환자를 자가지방이식술로 치료하기 전에정기양 박사가 현지 의료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정 교수는 더욱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를 돌보고 치료하면서 자연과 우주의 신비에 관해 한층 더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야생조류 촬영을 위해 장초점 렌즈도 새로 구입했다. 낮 시간에는 새들의 생태를 카메라에 담고 밤이 찾아오면 천제망원경을 하늘로 향해 세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새들이 무리지어 살던 갯벌이 하나 둘 메워지고 밤하늘 별들을 관찰할 수 있는 천체 관측 장소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가 즐겨 찾던 평창의 청옥산을 비롯해 은하수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면 어김없이 캠핑족과 사진가들이 무리지어 찾아와 별을 볼 수 있는 어두운 환경을 훼손했다.
연세대 천문학과 변용익 교수와 정기양 교수가 ‘28인치 돕소니안 반사망원경’을 이용해 천체를 관찰하고 있다. 정 교수는 “천체망원경으로 처음 밤하늘을 보는 분들은 주로 달이나 행성을 관측한다. 이런 천체들도 멋지지만 태양계를 벗어나면 수많은 성단, 성운, 은하 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이렇게 밤하늘 깊은 곳에서 빛나고 있는 천체(Deep-sky)들을 살피는 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천체 관측 명소에 풍력발전단지, 스키장, 골프장과 군사시설 등이 들어서고 전력을 적게 소모하면서도 밝은 LED 등이 급속히 보급되면서 별을 볼 수 있는 공간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부끄럽게도 OECD 20개국 중에서 ‘빛공해 1위국’이다.
그래서 정 교수는 최근 들어 하늘을 보는 일보다 하늘을 향해 마구 올라오는 빛들을 막아내는 일에 주력하고자 한다. 비단 빛공해(光害·Light pollution)는 별을 관측하는데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빛공해가 인간의 삶과 동식물에도 악 영향을 끼치고 있는게 더욱 큰 문제이다.
변용익 교수(사진 우측)는 "한국은 이탈리아와 함께 가장 심각한 빛공해를 겪는 국가로 천문대에서조차 어두운 별 관측이 어려워졌다"며 "한국은 도시지역에 대해서만 빛공해를 관리하는데 어두운 지역에 대한 보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세대 천문학과 변용익(59) 교수는 “야간 환경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귀중한 천연 자원이다. 통제되지 않은 실외 조명의 빛은 별을 숨기고 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었다.”면서 “함부로 사용하는 빛은 인간의 건강과 동식물 생태계의 안전을 위협하면서 동시에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라며 빛공해의 위해성에 대해 말했다.

 -온 나라가 불야성, 빛공해로 몸살 앓는 지구
빛공해(Light pollution)란 지나친 인공조명의 부적절하고 과도한 사용으로 밤에도 낮처럼 밝은 상태가 유지되는 현상을 말한다. 눈부신 빛은 미세 먼지나 지구 온난화처럼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생태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공에서 촬영한 한반도 광해지도
북한은 평양 지역 일부만 환하고 나머지는 거의 빛을 볼 수 없으나 남한은 과도할 정도로 빛이 많아 보인다. 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황홀함을 선사하는 야경의 이면에는 who에서 규정하는 발암물질이다. 우리의 시선을 즐겁게 하는 인공조명이 지나친 경우는 빛공해이다. 실제 전 세계 인구의 83%가 빛공해의 영향을 받고 있다. (사진=Light pollution map)

인공조명은 태양광을 제외한 가로등, 형광등, 보안등, 휴대폰 불빛 등 다양한 인공불빛을 포괄한다. 빛공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생태리듬이 무너져 체내에 이상신호가 발생한다. 자연의 생태계는 낮에는 적절한 빛을 받고 밤에는 어둠 속에 있을 때 가장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 조명영역 밖으로 누출되는 인공 빛은 사람뿐 아니라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쳐 생태계 교란, 농작물 수확량 감소 등을 일으킨다.

정 교수는 “야간의 지나친 건물조명을 제한하고, 과도한 가로등 개수를 적정하게 줄이고 조도를 낮추어야한다.”면서 “움직임 감지장치를 가로등에 달아서 필요할 때만 켜지도록 하고, 조명 주위에 갓을 씌워서 빛이 땅으로만 향하게 하고 옆으로나 하늘로 올라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이 같은 일들은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일” 이라고 강조했다.
‘불빛 out, 별빛 on’ 빛공해로부터 지구 살려야
 인공조명의 밝기에 따라 밤하늘 모습이 변하는 상태를 등급별로 표시했다. (사진=ESO/P. Horálek, M. Wallner)

정기양 교수는 변용익 교수 등 뜻을 함께하는 지인들과 불필요한 빛, 잘못 사용되고 있는 빛, 함부로 방치하고 있는 인공조명을 국민과 해당기관에 알리고 시정하려고 한다. 이 같은 일들을 실천하기위해 조만간 빛공해 관련 NGO 단체도 만들 계획이다.
요즘같이 전기가 부족한 시점에 지나치게 밝고 불필요한 인공조명을 줄여 전기도 절약하고, 자연과 생태계 회복에 도움을 주어야한다. 인간의 숙면권도 돌려주고 별 가득한 밤하늘을 국민에게 돌려줄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다.

정 박사가 태국 학회를 마치고 촬영한 크낙새 사진, 우리나라에서 크낙새는 멸종했지만 태국에서는 아종인 White-bellied woodpecker (Dryocopus javensis)가 살고 있다.

정기양 박사가 태국 학회를 마치고 야생조류 촬영을 하고 있다. 정 박사는 그동안 촬영해서 정리해 놓은 새의 종류가 천 가지는 넘는다고 말했다. 

사람을 치료하는 일 외에 아름다운 자연을 기록하고 이 땅의 상처 나고 덧난 생태계를 보듬고 치료하려는 의사 정기양의 힘찬 발걸음을 응원한다.

인제=글‧사진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곽경근 기자
kkkwak7@kukinews.com
곽경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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